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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직선으로 진보하는 것도 아니고, 원으로 순환하는 것도 아니다 본문

명문장, 명구절

역사는 직선으로 진보하는 것도 아니고, 원으로 순환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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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거짓으로 진정시키는 이런 획일화된 사관은 인위적인 짜맞추기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그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마땅하다. 한과 당이라는 두 위대한 왕조 사이에는 소위 정통한 것이라고 주장된 연속성(3세기와 10세기의)의 한복판에 거대한 공백기로서 지속되었던 혼돈과 무정부의 시기가 있었다. 질서가 무질서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질서가 무질서에 대한 단순한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정치적 통일성이 분열 상태 다음에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하나의 경향은 반대의 경향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실행되고 지배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질서 또는 무질서, 통일 또는 분열 상태는 서로 대립되는 가운데 역사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대립적 요인들이다. 경향은 진정으로 긴장이고, 이러한 긴장 덕분에 역사는 혁신된다. 중국의 역사를 거대한 변화 ― 정치적 통일(고대 말엽), 분열(한나라 이후 3세기에), 재통합(7세기에서 9세기까지 수와 당 치하에서), 오랑캐에 의한 점령(송대 이후로 11세기, 그리고 13세기, 다시 만주족 치하의 17세기) ― 로 이끈 것은 바로 이 경향이다. 그러므로 현자라 하더라도 앞으로 도래할 변화가 어떤 것일지를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만 역사란 것이 이러한 방식으로 번갈아 나타남의 긴장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전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 즉, 역사는 연속적 진보의 선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왕부지에 따르면, 왕위 찬탈·분열·침략으로 이끄는 부정적 경향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특정의 고유하고도 독립적인 원리에 따라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에 걸쳐 재구성되는지를 고찰할 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번갈아 나타남의 실재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초기에 이러한 부정적 경향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흔히 부차적인 것으로서 판단되었던 우연한 사건이었다[기원후 초기에 있었던 왕위 공백기 동안에 왕망이 펼쳤던 짧은 기간의 통치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 통치는 3세기 초의 조비에 의해 이어지고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반복되었던 왕위찬탈 경향의 출발점이 되었다]. 동시에 그러한 경향이 시작되자마자 그러한 경향은 그것이 지닌 추진력 때문에 저절로 확산되고 끊임없이 발전하다가 결국에는 소멸했다(3세기에 시작되었던 분열의 경향은 이렇게 하여 10세기까지 주기적으로 계속되었으며, 송나라 때부터는 이러한 분열의 경향 다음에 침략의 경향이 이어지며 반복되었다). 출발점은 매우 사소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 출발점은 역사에 새로운 경향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인데, 이후 역사는 그러한 경향을 끊임없이 다시 빌려 쓰게 된다. 게다가 그러한 경향은 훨씬 더 낮은 수준까지도 질주하게 된다. 역사적 경향은 거대한 성향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사소한 경향은 후에 전개될 흐름을 수세기 동안 바꿀 수 있다. 특정의 주름이 한 번 접히면, 그 이후에는 '줄을 바꾸는 것도, 팬 홈을 바꾸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만(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도덕적 일탈에 대해서 양심의 심판에 따라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다. 최초의 탈선이 일어나기가 쉬우면 쉬운 만큼, 그 일탈을 바로잡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어렵게 된다.」*


15/09/11


* 프랑수아 줄리앙. (2009). 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박희영, Trans.).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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