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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올 흐름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흐름의 반전이다 본문
「바로 이러한 것이 왕부지가 역사 속에서 줄기차게 작동하고 있다고 발견해낸, 고대로부터 밝혀져 있는 전복의 논리이다. 사실 역사의 과정은 자연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방식으로 균형과 보상에 의해 작동한다. '응축된 것은 다시 새롭게 펼쳐질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것이 상황[勢]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경향이다.' 물론 경쟁적인 세력들 사이에서도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고대 중국에서 진나라가 점차 강해져 (경왕 때) 헤게모니를 잡게 되었다가 그 다음에 쇠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과정의 냉혹함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앞선 예(송나라의 성종과 왕안석)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권위적인 정치적 압력이 느슨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고(이것이 바로 '하늘'이다),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송나라의 성종이 그토록 야심차고 강압적인 정치를 시도했던 이유는 바로 평화주의가 극에 달해 무기력한 상태에까지 이를 정도로 길고 길었던 이전 정권(인종, 1022~1063)에 대한 성종 자신의 반작용 때문이었다. 과도함은 또 다른 과도함을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즉, 이완은 긴장을 불러들이고, 긴장은 새로운 이완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극도로 사소한 정치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번갈아 나타남과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경향'의 역학에 따라 해석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나라의 한 황제(기원전 1세기의 원제)의 그토록 악명 높았던 칙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관리를 위계화하기 위해 도덕적 기준을 정립한 이 칙령은 오히려 관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국가가 그토록 필요로 했던 이들의 도덕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조치 또한 앞선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밖에 설명될 수가 없다. 즉, 관리들 사이에 무정부 상태가 판을 치던 예전에 자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했던 관리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심지어 황제의 의혹을 사면서까지 인정받고자 애썼다. 이로인해 '반전의 경향'에 따라 황제는 관리들의 위계를 재조직화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들은 그 위계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닥쳐올 흐름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흐름의 반전은 훨씬 더 두려워해야만 한다.'」*
15/09/14
* 프랑수아 줄리앙. (2009). 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박희영, Trans.).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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