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필연성

「이사야 벌린은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역사에 관한 모든 장대한 이론들의 허구를 폭로하는 데 전념했다. 그가 공격한 이론 중에는 역사의 방향성 이론도 포함된다. 그런데 벌린의 오류 중 하나는 그와 같은 이론들을 엄밀한 결정론, 즉 미래의 모든 세부적인 측면이 원리적으로 예측 가능하며 오늘날의 모든 세부적인 측면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돌린 데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러분은 역사에서 패턴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우리가 행하고 겪는 모든 것들이 고정된 패턴의 일부"라고 믿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역사의 패턴의 핵심은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요지는 역사의 패턴이 장기적으로 고정성의 결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의 황제가 어쩌면 단순히 변덕에 의해서 중국의 해상 원정을 폐지해버리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세련된 국가를 내부로 침잠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그림은 여전히 변치 않고 남아있다. 세계화와 정보 시대, 그리고 그것이 미치는 모든 정치적 의미는 여전히 카드 패에 숨겨져 있다.」*

'역사의 진보'라는 개념을 전면 부정하는 도올은 이사야 벌린의 라인인 것 같다. 반면 로버트 라이트는 진보에 대한 강한 확신과 낙관을 갖고 있다. 신선하다. 그동안 암담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의 책을 주로 읽어서 더욱 그렇다.

13/12/30

* 로버트 라이트, <넌제로>에서 봄.

역사  
로버트 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