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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층과 지배서열을 가르는 자본의 이동 속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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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층과 지배서열을 가르는 자본의 이동 속도

모험러

「전례 없는 정도로 오늘날의 정치는 자본이 움직이는 속도와 지역 실권자들의 '(속도를) 늦추는 능력' 간의 전투 같은 것이 되고 있는데, 여기서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 쪽은 지역 기구들이다. 유권자들의 안녕에 헌신하는 정부라면, 자본이 자국으로 들어오게 하고, 일단 들어오면 관광객처럼 하루하루 숙박료를 내며 호텔방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빌딩 사무실을 세워달라고 감언이설을 할 도리밖에 없다. (자유무역 시대의 흔한 정치용어를 빌리자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 이는 곧 정치게임을 '자유로운 기업'의 규칙에 알맞게 바꾼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만 자본 유치를 이룰 수 있고 이루려고 시도해볼 수 있다. 즉, 규제완화, '기업 활동 규제' 법률과 조항들을 무력화시키고 휴지조각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재량껏 입법권을 사용함으로써 정부의 힘을 자본의 자유를 억제하는 데 쓰지 않겠다는 정부의 선서가 신뢰할 만하고 확실한 것이 된다. 정부가 정치적으로 관장하는 지역이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본이 장차 일을 해나가려 할 때 우호적이지 않다는, 혹은 옆 나라들보다는 덜 우호적이라는 인상을 줄 만한 모든 조치를 억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낮은 세금, 거의 없다시피 한 규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연한 노동시장'을 의미한다. 좀더 일반적으로는, 자본이 앞으로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 해도 사람들은 이에 조직적 저항을 할 능력도 안 되고 그럴 생각도 없이 고분고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이게도, 정부들은 자본이 떠나겠다는 사전통고를 촉박하게 하거나 아예 통고조차 없이 술쩍 떠날 자유를 확연히 보장해주어야만 자본을 제 자리에 붙들 희망이 있다.


육중한 기계와 거대 공장의 직원들이라는 무거운 바닥짐을 훌훌 던져버리고, 자본은 그저 선실 짐칸에 넣을 만큼 가벼운 짐만 달랑 들고 가볍게 여행한다. 짐은 서류가방, 휴대용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가 전부이다. 민첩함에 대한 새로운 태도는 모든 결속, 그중에서도 특히 안정적인 결속을 대번에 쓸데없고 우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일단 움직임이 시작되면, 그것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생산성을 더 높일지도 모를 다른 옵션들을 사전에 제거하여 바람직한 경쟁노선에서 일탈하려 한다. 전세계의 주식 매매와 경영진들은 '살빼기' '감원' '회사 분할' 같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모든 결속 끊기의 조치들에 기꺼이 보상을 해주려 한다. 반면 회사가 증원이나 고용 확대, 또는 장기적 계획이라는 '수렁에 빠져들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즉각 처벌을 한다. 후디니식 '탈출 마술사'들의 사라지는 기술, 도피와 회피의 전략, 필요하면 언제든 달아날 수 있는 민첩함과 능력, 이러한 결속 끊기와 비헌신의 새로운 정책의 축이 오늘날 경영에서는 지혜와 성공의 증표이다. 오래전에 미셸 클로지에가 지적하였듯이, 불편한 결속과 성가신 헌신에의 의무, 자유로운 책략 구사를 막는 의존성에서 해방되는 것은 언제나 지배자가 가장 좋아하는 효율적 무기였지만, 오늘날 그 무기의 공급과 이를 사용할 능력은 이전의 근대 역사에서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덜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다. 오늘날 아마도, 가장 으뜸가는 사회 단층화와 지배서열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이동 속도이다.」*


15/08/28


* 지그문트 바우만. (2009). 액체근대. (이일수, Trans.). 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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