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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무거운 자본주의 시대, 고체 근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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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무거운 자본주의 시대, 고체 근대

모험러

「낡은 지역적/공동체적 유대를 허물고, 습관적 방식과 관습적 법칙에 전쟁을 선포하고, 과거와 매개하는 모든 힘들을 갈아서 분쇄해버리는 일, 이 모들 일의 전반적 결과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혼미한 망상이었다.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것'은 강철 기둥을 세우기 위해 철을 녹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녹아서 이제 액체가 된 현실들은 새로운 수로를 따라 새로운 주형틀에 담겨 어떤 형태를 갖출 태세가 된 것처럼 보였다. 과거에 그 현실들이 스스로 형성해놓았던 강바닥을 흘러갔더라면 결코 얻지 못했을 형태 말이다. 아무리 야심만만한 목표라고 하더라도, 생각하고 발견하고 발명하며 계획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행복한 사회,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바로 다음 모퉁이까지 와 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철학자들의 설계도에는 이미 그 사회의 임박한 도래가 예견되어 있었고, 실천가들의 방과 지휘소에서는 그 대략의 윤곽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는 참이었다. 철학자들과 실천가들이 공히 노고를 쏟아부은 목표는 새로운 질서의 건설이었다. 새롭게 찾은 자유는 미래에 질서정연한 일상을 불러오려는 노력 속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야 했다. 어떤 것도 변덕과 예측 불가능한 과정, 우발과 우연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었으며 모든 형식은 좀더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개선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현재의 형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잡동사니와도 같은 과거의 필연은 물론이고, 막 난파당한 유배자들이나 표류자들을 뭍으로 끌어올려 각각의 처지에 맞게 터전을 마련해주고 정착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현재로서는 헐겁기만 한 모든 목표들로 다시금 단단히 몪어야 할 이 새로운 질서란 엄청나게 방대하고 돌이나 강철 같은 속성의 고체로, 오래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만 했다. 큰 것은 아름다웠고, 합리적이었다. '크다'는 것은 힘, 야심, 용기를 의미했다. 새 산업질서가 건설되는 현장 곳곳에는 이러한 힘과 야심의 기념물, 파괴할 수 있든 없든 적어도 겉으로는 파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기념물들이 늘어섰다. 기념물들은, 예컨대 담장 안에 육중한 기계류와 기계공들로 가득한 거대한 공장들, 수로와 다리들, 영원을 숭배하는 의식과 신도들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세워진 고대 사원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웅장하게 세워진 기차역들에 의해 방점이 찍히는 철도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도로망 같은 것들이다. 


"역사는 헛소리다"라고, "우리는 전통을 원치 않는다"라고, "우리는 현재를 살고 싶고, 쥐뿔만큼이라도 가치 있는 역사는 우리가 오늘 만드는 역사"라고 선언했던 바로 그 헨리 포드가 어느 날 노동자들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리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노동자들이 포드 자동차를 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농담조의 설명이었다. 포드 노동자들이 차를 산다 해도 그 숫자는 전체 판매량에서 극히 미미한 정도였지만 임금을 두 배로 올린다는 것은 포드의 생산원가에 엄청난 부담이었으니 말이다. 관례를 깨는 조치를 취한 진정한 이유는 성가실만큼 높아진 노동의 이동성을 저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일단 포드에 들어오면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랐으며, 그들이 평생 그곳에서 일을 하여 그들을 훈련하고 가르치는 데 투자한 비용이 제값을 해내길 원했다. 그런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자기 직원들을 노동력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직장에 붙들어놓고 떠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마치 헨리 포드 자신이 부와 권력을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그 노동력을 사용하는 데 의존하였듯이, 노동자들 또한 그의 공장에 고용된 상태에, 그들의 노동력을 소유주에게 파는 상태에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 기실 고체 근대는 무거운 자본주의 시대, 상호 의존성으로 강화된 자본/노동이 결합된 시대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생계 때문에 고용된 상태에 의존하고, 자본은 재생산과 성장 때문에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의존했다. 그들이 결합하는 장소는 하나의 고정된 주소였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없었다. 육중한 공장의 담장들이 감옥 속 두 파트너를 감금하고 묶어두었다. 자본과 노동자들은 경제적 형편이 좋든 나쁘든, 병이 들든 건강하든 간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속되어 있었다. 공장이 그들의 공동 서식지인 동시에 참호전을 벌이는 전투장이고 꿈과 희망을 키우는 자연의 집이기도 했다.」*


15/08/27


* 지그문트 바우만. (2009). 액체근대. (이일수, Trans.). 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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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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