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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국을 맞이해야만 파국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본문
「하지만 온갖 이야기를 하고 온갖 것을 읽고 생각해봐도, 음울하고 참혹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야말로 세계는 카네티가 말한 '진짜 작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세계는 파국으로부터가 아니라 파국의 예언자들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극소수의 창백한 예언자들은 각자의 광야에서 외치고 있다. 하지만 잘 보호되고 있는 세계에 사는 주민들은 거주권을 매정하게 거부당하지 않는 한은 예언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가 계속 상기시켰듯이(헛수고였다), 인위적인 맹목은 유전이다···. 또 하나의 파국이 있기 직전인, '1933년과 다음 2~3년 동안에 신생 제3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이해한 사람들은 오직 몇 천 명에 불과한 난민들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난민들을 '아무도 듣지 않는 카산드라의 새된 목소리'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한 차별의 출현이었다. 이로부터 몇 년 후인 1938년 10월, 쾨슬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모스(Amos), 호세아(Hosea), 예레미아(Jeremiah)는 매우 뛰어난 선전가였지만 자기 민족을 뒤흔들어 경고를 새겨듣게 하는 데 실패했다. 카산드라의 목소리는 벽을 뚫고 나갔다고 하지만, 결국 트로이 전쟁은 일어났다.'
우리는 파국을 맞이해야만 파국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아, 회고적으로, 단지 회고적으로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실로 섬뜩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시도해보지 않는 한, 거듭해서 그리고 더욱 더 열심히 시도해보지 않는 한, 그 생각이 틀렸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15/08/12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안규남, Trans.).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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