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칙센트미하이 (11)
모험러의 책방
요즘엔 출판사 서평만 읽어도 책의 핵심을 다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래는 신간 출판사 서평의 일부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을 멈추라고 요구한다. 오히려 자신을 잊어라! 동의한다. 칙센트미하이도 어느 책에선가 사람이 불행을 느낄 때는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라고 말한 바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심리학 정보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졌을까? 아니, 행복해질 수는 있을까? 저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짓부터 당장 그만두라!”고 당부한다. 자기 내면의 문제를 찾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파헤칠수록 “삶은 지뢰밭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엉뚱한 길로 인도한다. 고민과 고통으로 점철된 가..
「사실 사회가 저절로 저절로 복합성이 높아지고 사람들이 저절로 점차 한계를 초월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엔트로피, 질서의 발밑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관성력을 꺽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진화 과정의 상당 기간 동안 유기체가 진화한 까닭은 스스로 의도해서가 아니라 외부 힘과 경쟁과 사건이 유기체를 그렇게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삶의 질이 영적 불길을 따라 솟구쳐 올라가던 순간, 플로우와 복합성이 하루하루에 녹아 있던 순간은 우연이 아니었다.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복합성이 증진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 가지 해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각자 자아를 개선하고,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 더 나은 사회를 ..
「어떻게 해야 플로우를 경험하고 더 복합적인 자아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진화에 공헌할 수 있는가? 우선 무엇보다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을 최대한 음미하지 않으면서 그저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떤 사람이 내적 불행 때문에 폭발할 듯한 상태라면, 비록 그가 정의롭다고 해도 그를 믿기란 어렵다. 그의 행동은 모범이 될지 모르지만, 그 의식의 부조화는 위험하다. 플로우는 그 자체로 보상일 뿐 아니라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최고의 비책이다. 그러나 자아의 지평을 넓혀주는 활동에서 플로우를 발견하지 않는한, 즐거움만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를 이끌어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복합성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적인 호기심과 관심, 늘 새로운 도전을 발견하려는 마음이 적절한 기술을 ..
"행동할 기회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것이 무서운 장애물인가 흥미로운 도전인가 하는 점은 객관적인 여건보다는 그것을 마주한 사람의 심리적인 준비 상태에 달려 있다."* 13/12/22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에서 봄. 칙센트미하이 도전
「지혜의 세 번째 측면은 한마디로 말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말했듯 "지혜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믿은 사람은 고대 그리스인뿐이 아니었다. 2,000년 뒤에 몽테뉴는 이렇게 썼다. "지혜의 가장 두드러진 징표는 끊이지 않는 명랑함(쾌활함)이다." 어느 문화에서나 현자는 고요한 행복을 누리는, 부러운 위치에 도달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현자들이 했듯이 매우 보편적인 목표에 정신 에너지를 투입하고, 사적인 이득을 위해 애쓰는 대신 더 큰 조화를 목표로 삼을 때, 사람은 자아가 확장되어 진화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자기 중심적인 행동 방식을 초월한다. 그러한 자아는 육체라는 유한한 틀을 넘어서는 목표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라면 불행해질 일에 덜 휩쓸린다. 지혜로운 이는..
「우리 시대의 한 가지 문제는 자제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효과적인 밈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다수 사람에게 죄악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할 정도로 구시대의 것이 되었고, 복합적인 목표(좋은 시민, 직업적 자긍심, 법률과 질서, 절제와 책임 등의 개념)에 힘쓰게 하는 세속적인 방법 역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개인이 자기 수양의 필요성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졌다. 아마도 미래를 바꾸려면 주의력을 마지막 한 줌까지 모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좀 더 기꺼이 자연 발생적인 욕심을 절제하고 복합성에 응하려 할 것이다. 결국 그것은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다. 여분의 쾌락을 내주는 대신, 늘 흥미로운 영적 성장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므로. 영성..
「광고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것은 동물적인 건강, 감각적인 만족, 그리고 감각적 자극이나 최신 유행 상품을 즐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걱정이나 책임의 부재다. 현대 광고의 도상은 과거 조상들의 주물 숭배나 토템 숭배로 회귀한 듯 보인다. TV 광고를 일종의 종교 드라마로 보는 마르틴 에슬린에 따르면 TV 광고의 도덕적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신교다. 그것은 강력한 힘의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 문자 그대로 모든 상품이나 소비재에 담긴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바람과 물과 나무와 강에 다양한 님프와 드라이어드와 사티로스와 기타 각 지역의 신들이 거했다면, TV 광고의 세상도 그렇다. 여기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다신교는 상당히 원시적인 것으로, 정령 숭배나 주물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
"반체제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주류 문화에 지배되는 사람들만큼 반체제 가치관에 똑같이 혹은 더더욱 지배될 때가 많다."* 주류 문화든 반체제 문화든, 그것에 지배되고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13/12/22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에서 봄. 칙센트미하이
「쾌락과 즐거움(혹은 몰입)의 차이는 이렇다. 쾌락은 유전으로 프로그램 된 필요(먹기, 마시기, 쉬기, 성행위, 사교성 등)에 항상성이 깨어질 때 그것을 되찾아주면 발생하는 반면, 즐거움은 대개 유전으로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일에 기술을 활용한 결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쾌락은 쉽게 물리기도 하지만 쉽게 충족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하루에 같은 음식을 여러 번 먹으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다. 즐거움은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으나 과제가 점점 어려워지거나 새로워지지 않으면 쉽게 지루해질 소지도 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쾌락과 달리 즐거움은 발전적 변화로 이어진다. 오래된 격언 중 이런 관계를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몇 시간 동안 행복해지고 싶으면 술에 취하라. 몇 년 동안 행복해지고 싶으면 결혼하라. 영..
「이 책의 논제는 '진화 과정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일부가 되는 것이 현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매순간 즐기는 최고의 방법' 이라는 점이다. 진화의 작동 원리와 거기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이해하면, 현재의 세속적인 문화에서 찾지 못하는 방향과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목표를 포기하고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와 정반대다.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개발하면서 동시에 우주에서 진행되는 더 큰 과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인간이 결국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욱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바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수동적으로 쉽쓸리기보다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편이 더 만족스럽다.」* 천인합일의 경지. 13/12/21 * 미하이 칙센트미..
「쾌락은 강력한 동기유발 요소이지만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쾌락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욕구에 만족한 채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게 하는 보수적인 힘이죠. 그러나 무아도취(enjoyment)는 항상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때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등산가에게는 탈진, 혹독한 추위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고통, 추락 사고를 당할 위험이 으레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산에 오르는 일을 결코 그만두지는 않거든요. 물결이 넘실거리는 청록빛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의 야자수 아래 앉아 칵테일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산마루에서 느끼는 환희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13/12/13 * 마틴 셀리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