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가 비판 (11)
모험러의 책방
자각적 반성 -> 직업적 학문, 주체적 해방 -> 예속적 억압, 상호적 배려 -> 일방적 권위로 유교가 타락하는 과정은 기독교의 타락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기축시대 이후, 동서양의 정신의 영웅들은 모두 당대를 거슬러 또 다른 지평의 ‘현실’을 읽었던 사람들이다. 유교 또한 그러했다. 『논어』를 펼치면 공자와 그 집단이 당대의 상식과 이념과 투쟁하고 있는 생생한 기록을 만난다. 그런 점에서 유교는 본시 ‘순응적’이 아니고 ‘비판적’이다. 우리는 이때의 ‘도(道)의 기사도’들을 한 대 이후 형성된 제도화된 유교, 권력화된 유교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은 유학이 소집단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권력과 제도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부터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가 자각적 반성..
「리(理) 한 글자에 의지해 천하의 일을 결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오로지 리에 의지해 결단하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지지. 위의 덕이 박절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상처를 입어 사람들도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단다. 모름지기 장자長者의 기상을 가져야 하는 것이야. 악은 숨겨 주고 선은 드러내 주며, 남의 좋은 점은 완성해 주고 남의 악은 이루지 못하게 하며, 자신 스스로는 무겁게 책하면서 남은 가볍게 탓하는 것, 이것이 모두 장자의 기상이지. 어진 사람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이지, 자잘한 소인 유학자들이 미칠 수 있는 지경이 아니야. 내가 『통감찬요』 등의 책을 보니 인물 비평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에 털끝만큼도 가차 없어 엄하다고 할 만하더구나. 하지만 결단이..
이토 진사이는 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며 주자학이 리(理)라는 글자에만 집착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너그러운 성인의 기상이 없어 "자기 지키기가 너무 엄격하고 남 꾸짖기가 너무 심해, 폐부에까지 스며들고 골수에까지 젖어들어 마침내는 각박한 무리가 되고 말았"다고 슬퍼하고 있다. 통쾌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토 진사이 역시 "공자는 최상의, 지극한, 우주 제일의 성인이시며 『논어』는 최상의, 지극한,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말하며, 노자와 붓다의 가르침은 오직 허무와 적멸만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미혹시키는 이단으로 단죄하고 공자와 맹자가 제시한 기준은 만고불변에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 어찌 이리 각박하고 좁은가. 또한 공자가 ..
「(주자의 경전 해석에 일자일구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소소한 상례의 기간과 절차를 두고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이고, 이 입법을 무시한 다른 인종과 문화는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과부에게 재가를 하기 보다는 절개와 의리를 강요하는 임진왜란 이후 노론이 주도하는 주자학 문화에 대한 각주에서) 왜 조선 후기 그 예가 문제였을까. 나는 어느 날 니체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거세나 근절 같은 것은 의지가 박약하고 퇴락하여, 도저히 절도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느라고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수단이다. ... 그러한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퇴락한 사람들이다. ... 성직자와 철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예술가들의 역사를 조사해보라. 관능에 대한 가장 극심한 독설..
「현상윤은 해방된 이후 『조선유학사』를 쓰면서 그 마지막에 '유학의 죄'를 몇 가지 적어두었다. 1) 문벌을 중시하여 인재를 경시하고 계급을 고착시킨 점. 2) 가족공동체의 결속과 화해를 강조한 나머지, 배타적 가족주의로 흐른 점. 3) 당쟁의 격화로 하여 학문적 대화와 토론이 막히고, 국정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건설적인 제안이 채택되기 어려웠다는 점. 4) 무武, 즉 국방과 군사를 경시하고 문약에 흐른 점. 5) 가난을 자랑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점. 이리하여 한말에 이르러 풍속은 무너지고, 국정은 문란하여,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무도가 일상화되었다. "나라가 있으되 주인이 없고, 주인은 있으되 국민이 없었다. 국민은 또한 원수와 도적뿐인데다 무지하고 유약하고, 나태하고, 신뢰가 없어 국맥을 유지하고 외..
요 며칠 '유가 비판'을 올렸는데, 하필 오늘 또 이런 글을 봤다. 주희가 위선자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불변의 이치(理)를 상정하는 철학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으로 읽으면 될 것이다. 폐쇄된 철학은 다른 사상체계를 함부로 이단으로 몰며, 다른 삶의 양식을 함부로 응징하려 든다. 도道는 열린 길이어야 한다. 「주희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덕분에 후대인들로부터 공자에 준하는 주자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위군자 행보로 점철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가혹한 도덕윤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욕정을 인욕으로 표현했다. 이익과 욕심에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성리학자들은 인욕을 마치 뱀이나 전갈을 보듯 하면서 한치의 착오도 없는 천도를 좇을 것을 주장했다. 인욕을 완전..
「공자가 제齊나라에 가서 경공을 만나 뵙자, 경공은 즐거워하면서 그에게 이계 땅을 봉지로 내려주려고 안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안자는 이렇게 반대하였다. "안 됩니다. 저들은 오만하면서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이들로서, 아랫사람을 교화시킬 수 없습니다. 또 백성을 느슨하게 하여 백성과 정치를 친밀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천명天命만 세워놓고 일에는 게을러, 직무를 맡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장례에 너무 돈을 들여 백성과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가며, 상喪을 너무 오래 끌어 슬퍼하느라 세월을 허비하니,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안으로는 스스로 실행하기 힘든 것을 감추면서, 밖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유자儒者입니다. 그래서 복장을 특이하게 하여 얼굴을 꾸미기에만 힘씁니다..
「공자와 묵자의 제자들과 그 무리들이 천하에 꽉 차 있고, 그들 모두가 인의仁義의 도술로 천하에서 가르치고 이끌고 있지만, 어디에도 그 도술을 실천하는 바가 없는 것은 가르치는 자들도 오히려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인데, 하물며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랴? 이것은 어째서인가? 인의의 도술은 밖을 꾸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밖을 꾸미는 일로 (생명의 실질에 통달하는) 내적 수양을 이긴다는 것은 보통 사내와 천민도 실천할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군주에게 있어서랴? 오로지 생명의 실질에 통달해야만 인의의 도술이 저절로 실천되는 것이다.」* - , '유도有度' 중 유가의 인의仁義는 가르치는 자들도 실천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날카롭다. "As if principle"이라는 것도 있듯이 군자인 척 꾸며서 군자..
「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 나머지 실밥과 같은 보잘것없는 찌꺼기는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것이며, 그 외 기와 조각과 지푸라기와 같은 보잘것없는 부분들이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 '귀생貴生' 중 「탕임금이 이윤에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이윤이 대답하기를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면 천하는 다스려질 수 없습니다. 다스려질 수 있으려면 몸이 먼저 다스려져야 합니다"라고 했다. 무릇 일의 근본이란 반드시 먼저 몸을 다스리고 정기를 아껴야 하는 것이다. 새것을 받아들이고 옛것을 버리면 살결이 마침내 두루 잘 통하게 된다. 정기가 날로 새로워지고 사악한 기운이 모두 나가버리면 마땅히 누려야 할 나이에까지 이르..
최근 『공자』, 『맹자』, 『순자』, 『대학』, 『학기』, 『중용』 등 유가의 경전들을 일별했다. 유가도 궁극에 이르면 결국 도가나 불가와 같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서겠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도가라는 생각을 했다. 도가는 자유롭고 유연하고 포용적이며 유머있고 여성성을 근본으로 남녀(음양)가 상생하는 도(道)다. 유가가 남성적이고 근엄하고 귀한 신분을 위한 도라면, 도가는 여성적이고 유쾌하고 광대와 상놈들을 위한 도다. 물론 유가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왕양명 선생을 보라. 양명학은 참으로 유가의 궁극이다. 도올 선생의 주석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그의 번역은 박력있고, 논쟁적이고, 자세하고, 개성이 있어 흥미진진했다. 나는 그런 얌전하지 않은 번역이 좋다. 도올의 참신한 ..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의 유가, 묵가, 도가에 대한 평. 그는 도가였던 듯 하다. 「유가의 학설은 너무 광범위하여 요점을 잡아내기가 어려우므로 힘써 연구해 보았자 효과는 적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학설을 모두 따르기는 어렵다. ... 묵가는 지나치리만큼 검소함을 내세워 따르기가 어렵다. 이로인하여 모두 따라 실천할 수는 없지만, 그 근본을 튼튼히 하고 씀씀이를 절약해야 한다는 견해는 버릴 수 없는 것이다. ... 도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행동을 무형의 도에 들어맞게 하며, 만물을 풍족하게 한다. 그 학술은 음양가의 천지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유가나 묵가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취하여 시대에 따라 더불어 옮겨가고, 만물에 호응하여 변화하며, 풍속을 일으키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