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앤드류 포터 (7)
모험러의 책방
「진정성 허구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근대와 화해하고 지난 250년이 비극적 실수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적어도 총체적으로 봤을 때 근대를 끝장내고 후진해 향수 젖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은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다. 근대와의 화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 포용하는 일을 수반한다. 그것은 두 가지가 단순한 필요악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 구조와 도덕 기반을 갖춘 정치·경제의 조직체계로서 이런 체계보다 일정한 장점을 지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시장에 등을 돌리는 일은 옳지 않다. 또한 분노와 억압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이들의 숨통을 터준 권리와 자유를 해치는 사회질서를 완벽한 것으로 이상화하며 갈망해서도 안 ..
「이런 모든 개탄의 와중에 프랜시스 후쿠야마 자신도 역사의 종착점에 놓인 삶에 관해 극심한 양가감정을 보였다는 점은 잊히곤 한다. 그의 논문에 담긴 우울한 어조의 마지막 문단은 통째로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역사의 종언은 매우 슬픈 시간이다. 인정을 구하는 투쟁, 순수하게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 자세, 대담성·용기·상상력·이상주의를 촉구하는 전 지구적 이데올로기 투쟁은 경제적 이해타산, 끊임없는 기술문제의 해결, 환경에 대한 우려, 까다로운 소비자의 수요 충족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탈역사의 시대에는 예술도 철학도 없고 그저 인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을 영원히 관리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존재했던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
「하지만 투표율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그렇게 대단한 척도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민들이 정치에 '도에 지나치게' 참여하던 사회라는 게 존재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체육관, 음악연주단, 야외활동 동아리 할 것 없이 시민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이 정당 노선을 따라 조직됐다. 이 과열된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투표율은 사소한 선거에서조차 어김없이 80퍼센트 이상을 자랑했고, 독일인들은 공적 영영에서 취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의 암묵적인 정치 성향을 반영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독일사회가 이렇게 심하게 정치화되어 있었던 덕택에, 집권한 나치는 그런 조직들을 너무나 쉽게 재조직화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를 새삼 새로 정치화할 필요 없이, 이미 위태롭게 정치화된 조직을 '나치화'하기만 하..
「지위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공백 상태를 싫어한다. 따라서 쿨의 종말이 곧 지위 사냥의 종말이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이다. 지위 추구의 욕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불을 켜면 허둥지둥 흩어져 몸을 숨기고, 조금 더 은근하고 조금 덜 노골적인 형태로 변신한다. 베블런의 고전적 양상에 따라, 알 만한 사람들은 쿨을 뒤로하고 다음 레벨로 넘어간다. 이제부터 연마할 기교는 번듯한 직장에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집에 온갖 것을 다 갖춰놓고도 정신적으로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교묘히 전시하는 것이다. 그저 뭔가를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유한 욕구에 초점을 맞춘 삶, 특별한 취향과 감각을 반영하는 삶을 창조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유기농 채소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가? 테..
「드디어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겉돌기만 하던 질문, 즉 진정성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에 도달했다. 거짓에 대비되는 진실이 존재하듯, 위장된 진정성에 대비되는 진정한 진정성이 존재할까? 이 질문에 조슈아 글렌은 보드리야를 좇아 아니라고 답한다. 어떤 것을 진정하다고 표현할 때마다 우리는 벌써 위장된 진정성의 영역으로 들어선다는 것을 안다. 글렌은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인들이 이탈리아 식당을 열어도 진정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자연, 인종, 계급은 엄연한 실재이고 늘 우리와 함께하지만, 진정한 과거, 진정한 자연, 진정한 비백인의 삶, 진정한 중산층 생활양식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글렌이 제기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그는 진정성에 대한 자의식의 자멸성을 지..
「루소의 저술에 중대한 결점이 있다면, 저자가 서투른 역사인류 학자라거나 위선적인 도덕주의자였다는 것보다도, 소심하기 짝이 없던 그가 파리 사회의 특정한 문제점들을 극단적으로 혐오한 나머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면을 제대로 평가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는 자기가 싫어하는 면만 비판할 줄 알았지, 문명화 과정이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의 일정한 타협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샌달이 지적한 '위선'이 아니라 협소한 반근대적 시야에 가깝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 루소의 지적 후계자들의 족보를 살펴보면, 그 협소한 시야를 열렬히 받아들여 근대에 대한 전면적인 비난으로 발전시키는 집단이 하나 존재한다. [쇠퇴론자들]」* 16/06/10 * 앤드류 포터, 20..
「진정성 추구는 상실된 화합을 복구하려는 시도다. 과거에 종교 의식, 기도, 성찬식에서 얻었던 것을, 요즘은 '오프라의 북클럽' 같은 방송이 제공하는 심리 분석, 자기계발, 감성, 감정, 향수, 여피 소비주의가 적당히 뒤섞인 지극히 현대적인 형태의 영성(spirituality)으로 충당한다. 또는 쇠고기, 닭고기, 채소, 면직물, 화장지, 드라이클리닝 할 것 없이 뭐든 '유기농'에 집착하는 것 역시 진정성 추구의 한 방편이 됐다. 그와 유사하게 지역 농민, 지역 책방, 지역 에너지 같은 지역 경제에 대한 관심 증가도, 낭비적이고 혼란스러운 대량생산 소비주의보다 소규모 공동체의 전일성(holism)이 훨씬 소중하고 보람된 것이라는 근본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혐오가 존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