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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 물었다. "고요한 때는 생각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끼다가도 일을 만나자마자 같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한갖 고요한 가운데서 수양할 줄만 알고 극기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으면 일에 부딪혔을 때 곧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만 비로소 확고하게 일어설 수 있으며, 비로소 고요해도 안정되고, 움직여도 안정될 수 있다." 13/09/03 * 정인재·한정길 옮김, 왕양명 지음, 에서 인용. 왕양명
"뜻을 세워 공부에 힘쓰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어린 싹이 돋아날 때는 아직 줄기가 없고, 줄기가 뻗어나올 때는 아직 가지가 없으며, 가지가 생긴 뒤에 잎이 생기고, 잎이 생긴 뒤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처음 식물의 씨가 발아했을 때는 다만 북돋아 주고 물을 주기만 할 뿐, 가지나 잎, 꽃이나 열매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헛된 공상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재배하는 노력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가지나 잎, 꽃과 열매가 생기지 않겠는가?"* - 왕양명 13/08/31 * 정인재·한정길 옮김, 왕양명 지음, 에서 봄. 왕양명 성실의 도
신유학이 불학과 도학과의 경쟁에서 밀리던 유학을 구원하고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이기론과 같은 형이상학을 이론에 도입해서가 아니라, 수행법을 도입해서가 아닐까? 신유학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는 주희는 19세 때 진사에 급재했는데 그때에도 불교에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24세 때 연편선생이라고 불리는 이통을 만난다. 이통은 이후 유가의 핵심 수행법이 되는 '정좌'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정좌를 통해 『중용』에서 말하는 희노애락이 발생하기 이전 상태인 "중中"에 거하여 천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통은 정좌 수행을 하며 산전에 퇴거하면서 세상과의 인연을 멀리하고 40여 년 동안을 가난한 생활을 즐기며 속박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속과의 인연은 끊었지만 배우러 찾아오는 학..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군자의 본성)은 반드시 우리 몸에서 색조로서 나타나는 것이니 그 기운이 청화하고 순결하기 그지없다. 그 청화하고 순결한 색조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얼굴이나 앞모습에 환히 드러나며, 등이나 뒷태에도 가득히 넘쳐나며, 팔과 다리 사지에도 곳곳에 뻗쳐 약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삶과 내면의 모습을 타인에게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에 도올 선생은 이렇게 주석하였다. 「수신(修身)은 추상적 과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몸의 단련과정이다. 따라서 수신의 전과정은 반드시 몸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몸의 색깔로 표현되어야 한다. 여기 "색(色)"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칼라(colo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공부는 간단하고 쉽다. 단지 참되고 절실해야 할 뿐이다. 참되고 절실할수록 더욱 간단하고 쉬어지며, 간단하고 쉬울수록 더욱 참되고 절실해진다." - 왕양명, 중 "바른 것에서 시작하라. 그러면 쉬워진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그러면 바르게 된다. 바름과 쉬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바른 삶에서 시작했는데도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른 게 아니었던 것이다. 바른 것에서 시작하면 삶은 점점 쉬워진다. 내맡김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 삶은 강물과 하나 되어 흐른다." - 오쇼, 중 "수련은 매우 간단하며 쉬운 것이나 어쩌다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정성으로 행하지 아니하니, 천 명, 만 명이 배워도 필경 끝까지 성공하는 이가 한두 명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배우는 이들은 정성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공부..
「"외물[바깥 사물]에 대처할 때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사물과 접하기 이전에 미리 마음을 수양해 둔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이러한 수양법은, 나날이 온갖 세상사에 몸담으면서 그것과 부단히 상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무시한 책상 위의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외물과 접촉하는 그 현장에서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갖추어가는 것, 또한 그것을 실제로 몸에 익혀가는 것이 양명학에서 말하는 사상마련(事上磨鍊: 일상에서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는 미발(未發: 외부자극이 있기 전의 고요한 상태)·이발(已發)이라는 단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 고지마 쓰요시 주희 선생은 알고 나서야 실천할 수 있다고 보았고, 왕양명 선생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로 실천이 곧 아는 과정이라고 보..
죽을 때를 아시는 분들이 있다. 보통 수행이 높으신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립군 이범석 장군의 새 어머니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어머니는 백일기도를 위하여, 어떤 고된 일이 있거나 눈비가 쏟아지나 아랑곳없이 밤 열두 시에 영천 약수물을 떠다가 나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리셨다. 백일기도를 올린 지 8년째 되던 해,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음식을 장만하여 일가친지들을 모두 불러다 풍성한 잔치를 베푸셨다. 때가 되어 손들이 모두 흩어져 갈 때, 어머니는 내 출가한 누님을 부르시며,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거라." 하시매, 누님이 모처럼 친정어머니 곁에서 유할 양으로 뒤처졌다. 누님을 앞에 앉히신 어머니는 평상시의 말투로, "내가 오늘은 떠난다." 하셨다. 누님은 어머니가 또 만주로 떠나..
언젠가 어느 글에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월평균 300만 원 이상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글을 봤다. 그러나 연 수입 80만 원으로도 천하에 아쉬운 것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경남 창녕에서 폐가를 수리하여 사는 석청산 씨가 바로 그렇다. 그의 주업은 '정신수련'이다. 부업은 다양하다. 기왓장이나 쌀가마니 등 등짐 지어 나르기, 부산역 광장에서 하모니카 불기, 전 세계를 누비며 그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단소 불어 주기, 손금 봐주기, 지압해주기, 영화 엑스트라 출현 등등. 석청산 씨는 산으로 도를 이루었다. 단순히 산에 들어가 도 닦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산' 자체를 탐구한다. 어느 한 분야의 궁극을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인이며, 그들이 깨닫는 무언의 지혜는 그 분야의 테두리 내로 ..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수행은 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듣지 못할 이야기가 없도록 나를 비워가는 것이다. 밤 깊어지고 사방이 고요해지면 마음은 주저주저하다가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신경이 쓰였는지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나는 곁에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말없이 마음을 안아준다. 12/12/13
'파자소암'이라는 화두는 '노파가 암자를 불사르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어느 노파가 선지식을 뵙는 기쁨을 얻고자 암자를 지어 한 수행승을 모시고 오랫동안 봉양하였다. 20년째가 되는 날 노파는 수행승의 경지를 알아보기 위해 딸을 시켜 유혹하게 하였는데, 딸이 전하기를 자신을 마치 고목이나 바위 대하듯 하더라고 했다. 이에 노파가 불같이 화를 내며 수행승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오욕칠정이 말라 비틀어진 것과, 오욕칠정에 매이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12/12/12 * 이은윤, 에서 봄. 2013/11/15 - 불로장생과 윤회 2014/12/30 - 덕에는 중시할 만한 것이 있고, 욕망에는 혐오할 만한 것이 없다 2014/1..
요즘 뵙고 있는 스님이 말씀하시길, 절방에서 혼자 하는 수행은 혼자 하는 연습게임과 같다고 한다. 혼자서 챔피언 먹으면 뭐하는가. 실전에 돌입하면 페인트 모션에도 움찔움찔 휘청휘청하다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방이면 K.O. 당하는데. 12/11/15
"저기요, 잠시만요. (... 어쩌구 저쩌구 ...) 저는 수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수도? 아, 수행자이시군요. 단체에 속해계신 가요?" "당연하죠. ***에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덕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수행은 혼자 하는 것이고, 덕을 나눠주는 '나'라는건 없습니다. 그래, 수행에 진전은 있습니까?" "그럼요." "다행이군요. 깨달음에 이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12/08/14
마르크스는 어디에선가 본질과 현상이 일치하면 과학은 불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본질과 현상이 일치한다면 수행 역시 불필요할 것이다. 수행은 현상으로 나타난 몸-마음이 자신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참나를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깨달은 분들은 말한다. 찾는 자가 바로 범인이며, 당신은 이미 깨달은 상태라고. 12/07/13 2012/09/21 - 본질과 현상 2
아드바이타(advaita: 비이원, 不二) 요가라는 것이 있다. 주어진 삶을 그냥 살 뿐인 요가다. 그러니 특별한 수행도 없다. 나와, 내 삶과, 내 눈에 비친 세상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것. 이것이 수행이라면 수행. 세상에서 가장 쉬운 요가이지만, 가장 어려운 요가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요가이기도 하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마음을 쉬게 하는.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은 계속 되겠지요."* 12/05/26 * 에 나오는 맹인 청년이 마하라지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떠나며 남긴말. 2013/11/15 - 깨달음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