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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루소의 저술에 중대한 결점이 있다면, 저자가 서투른 역사인류 학자라거나 위선적인 도덕주의자였다는 것보다도, 소심하기 짝이 없던 그가 파리 사회의 특정한 문제점들을 극단적으로 혐오한 나머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면을 제대로 평가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는 자기가 싫어하는 면만 비판할 줄 알았지, 문명화 과정이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의 일정한 타협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샌달이 지적한 '위선'이 아니라 협소한 반근대적 시야에 가깝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 루소의 지적 후계자들의 족보를 살펴보면, 그 협소한 시야를 열렬히 받아들여 근대에 대한 전면적인 비난으로 발전시키는 집단이 하나 존재한다. [쇠퇴론자들]」* 16/06/10 * 앤드류 포터, 20..
「무거운 근대에서 가벼운 근대로, 고체 근대에서 액체 혹은 유동화된 근대로 가는 길은 노동운동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골조를 구성하고 있다. 그 길은 또한 먼 길을 돌아, 역사의 악평이 자자한 소용돌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구상의 '선진화된'('근대화'라는 의미에서) 지역 전반에서 노동운동이 쇠퇴해버린 끔찍한 난국을 ― 이를 야기한 것이 대중매체의 무력화의 여파이든 광고업주들의 음모이든 소비자 사회의 유인력 때문이든 혹은 볼거리 여흥 위주의 사회가 주의를 산만하게 한 것이든 간에 ― 그저 대중적 분위기가 변한 것으로 설명해 버리고 마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도 않다. 엄청난 실책을 놓고 이를 '노동 정치가들'의 양면성 때문이라고 탓해보았자 소용없다. 삶의 맥락과 사람들이 살아온..
「물론 이런 상황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노동인생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것은 태곳적부터 그랬다고. 그러나 오늘날의 불확실성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새로운 유형이다. 우리의 생계와 장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도 모를 이 두려운 재앙은 쫓아버릴 수도 없는, 논쟁하고 합의하고 강제하여 얻은 조치들을 통해 단결하여 파국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가장 끔찍한 재앙이 제멋대로 강타하면서, 기괴한 논리로 혹은 도무지 논리랄 것도 없이 희생양을 골라 변덕스럽게 주먹을 여기저기 휘두르기에, 누가 끝장날지 누가 살아남을지 예상할 도리가 없다. 오늘날의 불확실성은 강력한 개인화의 힘이 되고 있다. 통합하기보단 분리하며, 다음날 눈을 떠보면 어떤 식으로 분리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낡은 지역적/공동체적 유대를 허물고, 습관적 방식과 관습적 법칙에 전쟁을 선포하고, 과거와 매개하는 모든 힘들을 갈아서 분쇄해버리는 일, 이 모들 일의 전반적 결과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혼미한 망상이었다.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것'은 강철 기둥을 세우기 위해 철을 녹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녹아서 이제 액체가 된 현실들은 새로운 수로를 따라 새로운 주형틀에 담겨 어떤 형태를 갖출 태세가 된 것처럼 보였다. 과거에 그 현실들이 스스로 형성해놓았던 강바닥을 흘러갔더라면 결코 얻지 못했을 형태 말이다. 아무리 야심만만한 목표라고 하더라도, 생각하고 발견하고 발명하며 계획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행복한 사회,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바로 다음 모퉁이까지 와 있다고 할..
「정주학(또는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출현했다. 이-기의 명확한 준별이 새롭다. 한당 시기까지 중국적 사유에서 이 양자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세계는 천(天, 유교), 진(眞, 불교), 도(道, 도교)의 신성함 속에 잠겨 있었다. 즉 성이 속을 통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주학에서 세계는 기로 이루어지고 기에서 이(理)가 분리된다. 정주학에서 이는 내면화된 윤리 개념이다. 이제 이는 기의 바다 속에서 힘써 탐구하여 찾아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자연과 사회질서가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으로 표상되지 않고 그 속에서 작동되어야 할 이(理)의 원리가 발견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정주학의 완성자인 주희는 지층과 화석에 근거한 우주진화론을 생각했고 자연 관측을 위한 기계 설계에..
근대성은 인류문명의 합작품이지, 서구문명의 독점 발명품이 아니다. 이 주장을 담은 김상준 선생의 책 은 유교와 동아시아를 포함, 세계 역사와 문명을 바라보는 내 관점을 뒤흔들어놓았다. 켄 윌버 저서들 이후로 가장 강렬한 지적 자극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를 넘어 근대성의 의미를 새로 발굴·해석하고 인류 문명의 공생적·윤리적 진화를 다시금 꿈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켄 윌버와 김상준의 프로젝트는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론(쉽게 말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스토리)은 삶의 태도와 방향을 규정한다. 밝은 비전을 품고, 더 건강하고 쾌활하게 살아가고 싶다. 큰 학자들의 좋은 스토리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근대문명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일종의 유럽물신주의..
「21세기에 가능한 근대성 이론? '근대성modernity'이란 포스트모던의 파도가 이미 지워버린 모래 위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한때 유행했으나 이제는 한물간 개념, 트렌드 아닌가? 그런데 무슨 근대성 이론인가, 그것도 21세기에. 지적 유행에 민감한 어느 세련된 식자들은 물을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조변석개하는 표면의 파도가 아니라 천 년 단위로 변하는 깊은 바다 속 해류를 본다. 포스트모던의 파도가 지우려고 했던 것은 서구의 세계 지배 기획으로서의 근대성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근대성의 자기비판이었다.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자기 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고,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의 비판성은 지극히 근대적이었다. 문제는 그 사조의 충격 속에서 잃어버린 역사 감각이었다. 끝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