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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근대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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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가능한 근대성 이론? '근대성modernity'이란 포스트모던의 파도가 이미 지워버린 모래 위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한때 유행했으나 이제는 한물간 개념, 트렌드 아닌가? 그런데 무슨 근대성 이론인가, 그것도 21세기에. 지적 유행에 민감한 어느 세련된 식자들은 물을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조변석개하는 표면의 파도가 아니라 천 년 단위로 변하는 깊은 바다 속 해류를 본다. 포스트모던의 파도가 지우려고 했던 것은 서구의 세계 지배 기획으로서의 근대성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근대성의 자기비판이었다.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자기 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고,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의 비판성은 지극히 근대적이었다. 문제는 그 사조의 충격 속에서 잃어버린 역사 감각이었다.

끝난 것은 서구의 세계 지배 기획으로서의 근대성이었지, 근대성 자체가 아니었다. 끝난 것은 서구가 세계를 지배했던 근대 세계 역사의 제2단계였지 '근대'라고 하는 역사적 시대 자체가 아니었다. 이제 근대 세계 역사의 제3단계, 아마도 근대 역사의 마지막 단계가 될 후기 근대가 시작되고 있다. 근대의 세계 역사는 여러 문명이 동등한 역할을 했던 초기 근대를 경과해, 서구의 세계 지배로서의 본격 근대를 거쳐 이제 비서구 문명권이 다시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후기 근대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야 비로소 근대세계 역사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아울러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고 했던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의 경구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헤겔이야말로 근대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역사화하고 체계화시킨 대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근대 역사의 마지막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발상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그가 보았던 것은 서구의 세계 지배 기획으로서의 근대성이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그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언급한 바로 앞 문장에서 철학이란 회색 위에 칠을 하는 늙은 시대의 작업이라 말했다. 우리는 달리 말하겠다. 철학은 영원히 새로운, 영원히 젊은 시대의 작업이라고. 헤겔은 자신이 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늙은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젊은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젊은이들, 또 하나의 신청년을 기다린다.」*

김상준 선생. 우리 사회에 이런 초특급 학자가 나타나다니. 원대한 시야, 통합적 전망과 비전, 참신하고 독창적인 주장,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고문학, 역사학, 철학, 인류학 등등 수많은 학문 분과를 자유로이 넘다드는 어마무시한 학문적 내공, 놀라울 따름이다. 켄 윌버 이후에 가장 나를 경탄하게 하는 학자다. 우리말 구사 수준도 학자의 글쓰기로는 최상급이다. 우리말을 제일 형편없이 구사하는 것은 물론 망가뜨리기 바쁜 집단이 학자들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더 돋보인다. 

14/07/18

* 김상준,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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