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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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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순자가 맹자보다 덜 매력적인 이유는, 칸트가 헤겔보다 덜 매력적인 이유와 비슷하다. 순자와 칸트는 신비주의를 이론에서 배제하여 합리적 철학은 얻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영원의 철학(영성, 하느님, 신, 天, Sprit, 뭐라 부르든)을 잃어버렸다. 도올을 포함해 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서에 맹자가 아니라 순자가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한다. 그러나 나는 순자가 아닌 맹자를 택한 주자의 안목은 과연 탁월했으며, 또한 그것이 신유학이 도달한 경지가 높았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서에 맹자가 아닌 순자가 들어갔으면 중국도 서양 못지않은 과학 문명을 발달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순자 번역가의 주장은 순자가 들어도 코웃음 칠 속류 관념론이다. 사서에 패도가 아닌 왕도를 주장하는 맹자가 들어갔다고 중국이 인자함과 정의로움으로 통치되는 왕도국가가 된 것도 아니듯이, 맹자가 들어갔다고 그것이 과학문명의 발달을 저해한 것도 아닌 것이다.

어제오늘 읽은 한 순자 연구서의 부제는 '통일제국을 위한 비판철학자'*이다. 내게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마음의 철학자다. 맹자에게는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 먼저였으며, 외부 세계의 질서는 그 결과로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순자 문하에서 (권력투쟁 끝에 참담한 최후를 맞는) 이사와 한비자 같은 패도 정치가가 배출된 것과, 그에 반해 먼 훗날이지만 맹자 계통에서 민중적이고 실천적인 왕양명이 배출된 것이 과연 전적으로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순자가 맹자의 신비주의 방향을 극복함으로써 마침내 유가가 맑아질 수 있었다고 평한 이택후보다는, 순자를 대체로 순수하지만 작게는 흠이 있다고 평한 한유의 평에 더 공감한다. 순자가 마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만도 아니다. 순자가 성인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공자나 맹자보다 더 무협지스럽고, 좀 이상한 방향으로 신비주의스럽다. 

그러나저러나 순자는 위대한 철학자다. 어쩌면 맹자야말로 유가의 이단이고, 순자야말로 유가의 집대성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맹자가 순자보다 더 사랑스럽지만, 순자 역시 앞으로 옆구리에 끼고 읽고 또 읽고 싶은 위대한 고전이다. 죽을 때까지 학문은 멈출 수 없는 것이라던 순자의 열정과 정진하는 마음을 앞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14/01/28

* 윤무학, <순자: 통일제국을 위한 비판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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