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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 명구절

유아독전적 환상

모험러
「윌버: .. 그러므로 '상위의 자아'(Higher Self) 진영은 사회적 관심사들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악명이 나 있습니다. 어느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즉 초작인적인(hyperagentic) '상위자아'가 세상에 일어나는 '만사'에 책임이 있다라는 겁니다. 이것은 에고가 철저히 유리되어 혼자 연극을 하는 것으로, 유아독존적 환상의 끔찍한 정신착란입니다. 이것은 영(Spirit)이 현현하는데 있어 그 작용인(agency)만큼이나 중요한 풍성한 사회적·문화적 교감의 네트워크를 단순히 억압합니다. 

이런 생각은 내가 단지 내 '상위자아'와 만나기만 한다면, 그 외 만사는 자연히 저절로 돌봐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애석하게도 보지 못하고 있는 바는, 영은 온우주의 사분면(all four quadrants) 모두로 언제나 동시에 현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은 어떤 수준에서든지 사회적·문화적 토대와 객관적 상관물들로 구성된 공동체 속의 나(self)로 현현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위자아도 더 깊은 곳에서 객관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광범위한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위자아'에 접촉하는 일은 모든 문제의 끝이 아니고, 오히려 모든 분면(all quadrants)에서 수행되어야 할 광대하면서도 지난한 과업의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질문: 그렇지만 이러한 접근방법들에서는 "당신이 당신 자신의 실재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요.

윌버: 당신이 당신 자신의 실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상자들이나 그들 자신의 실재를 창조해 냅니다. 아, 물론 요점은 순수하게 영적인 '진아'(Self)가 그 자신의 실재를 현현해 보인다는 것이겠죠. 자, 그럼 여기 베단타 힌두사상에서 나온 고사 하나를 봅시다. (이하 생략)」*

- 켄 윌버, <모든 것의 역사> 중

아마 이러한 유아독존적 환상의 가장 속류적 버전으로 알려진 것이 <시크릿>일 것이다. 나는 이 <시크릿>의 원조이자 좀 더 영적 버전인 <끌어당김의 힘>과 <볼텍스>를 읽어 봤다. <끌어당김의 힘>이 주장하는 우주의 법칙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슷한 것끼리 끌어당긴다. 둘째, 의식적이고 생생하게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재밌게도 나는, 위에 인용한 켄 윌버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끌어당김의 힘>의 두 원칙에도 동의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것끼리 끌어당긴다는 법칙은, 쉽게 말해 끼리끼리 놀며 내면과 외면은 하나라는 것으로 내가 이 블로그에도 가끔 썼던 주제이기도 하고, 늘 지지하던 가설이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것도, 나는 인간의 집념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가를 목격한 일이 많았으므로 별 저항 없이 동의할 수 있었다. 누군가 이런 책을 읽고 실천하여 실제로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전혀 놀라울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켄 윌버가 잘 지적했듯이 이런 류의 책에 담긴 모든 것이 내 탓이며, 내가 소망(욕망)하는 바 외의 나머지 것들은 알 바 없고(남들도 다 그 자신 탓이니까),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에고중심적인 세계관이다. 사실 나는 <끌어당김의 힘>의 근본 메시지는 일리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메시지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끌어 올리기는커녕 현실에서는 위와 같이 에고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자기계발 열풍에 야합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도 생각한다. 

켄 윌버가 지적하듯이 영(Sprit)은 나, 우리, 세계, 우주의 모든 수준에서 모든 방면에 걸쳐 상호연관적으로 현현한다는 사실을 이런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개인의 인식과 의식이 심화되고 고양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어떤 법칙과 개인의 성공보다 근원적으로 중요한 이 사실을, 이런 책이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건 각자의 의식 수준에 따른 끼리끼리의 법칙과 소망(욕망)의 법칙뿐이다. 의식의 저 어두운 밑바닥에서 사이코패스는 더 완전한 혹은 더 쾌락적인 살인을 소망하며 살고 있을 것이고, 근면하고 진취적인 사람들은 성공과 부의 성취를 소망하며 살고 있을 것이고, 의식의 저 드높은 곳에서 성자는 일체중생의 고통의 종식을 소망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살아갈 것이다. 

맞다. 끼리끼리 살고, 생각하는 대로, 소망하는 대로 산다.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더 넓어질 수 있고, 그리하여 더 넓은 범위를 우리의 이웃으로 포용할 수 있고, 우리의 의식은 더 높아질 수 있어서, '나'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우리'가 조화되는 번영을 소망할 수도 있다. 소망(욕망)도 진화한다. 나, 우리, 세계는 하나다. 이것이 참된 시크릿이다.

13/11/16

* 켄 윌버, <모든 것의 역사>에서 인용. 원서와 대조하여 문장 대폭 뜯어고침. 이 책은 번역의 질이 참담하다.  
** 에스더 & 제리 힉스, <끌어당김의 힘>, <볼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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