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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본문

명문장, 명구절

의인은 없나니

모험러
「폭력에 굴복함으로써 폭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견해는 그저 현실도피일 뿐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런 입장은 돈과 총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왜 이러한 현실도피를 하는 것일까? 철저하게 폭력을 증오하는 이들은 현대 사회에 폭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그들 자신이 지닌 훌륭한 감정과 고결한 태도가 모두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부당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입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차마 마주보기 힘든 엄연한 사실이 있다. 개별적인 구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류 앞에 놓인 선택은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두 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나치가 세계를 지배하도록 놔둘 수도 있다. 이것은 악이다. 아니면 전쟁을 통해 나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 역시 악이다. 당신 앞에 다른 선택은 없으며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장차 떳떳한 몸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문구는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도다"(마태복음 18장 7절)가 아니라 내가 이 글의 제목을 따온 문구이기도 한 "의인은 없도다. 아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장 10절)이다. 우리 모두 떳떳지 못한 일에 관여했으며 우리는 모두 칼로 멸망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때 "내일이면 우리 모두 착한 사람이 되어 시작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것은 헛소리다. 우리에게는 그나마 나은 악을 선택할 기회가 있을 뿐이며 공동의 품위가 다시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뿐이다.」*

- 조지 오웰, 「아니, 하나도 없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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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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