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이라는 말의 모호성

"그리고 나온 질문에서 '현실적'이라는 말이 좀 모호합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현실성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현실성'이라는 말을 가지고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 같아요. 왜냐면 현실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거든요.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이 현실성이고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사회, 정치 모순이 현실성이고, 자기 마음의 번뇌를 씻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교가 현실성이죠.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불교가 사변적일지 몰라도 자기 마음의 번뇌에 고민하는 사람은 불교가 현실적인 것입니다. 현실적이다, 실천적이다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현실성을 기준으로 세워놓고서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을 비현실적으로 매도하거든요.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것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그 다르다는 것에서 사유를 출발시켜야 합니다."*

- 이정우(철학자)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의 현실성과, 

춥고 배고픈 사람의 현실성이 다를 테고,

마음이 시끄럽고 혼탁한 사람의 현실성과,

고요하고 맑은 사람의 현실성이 다를 테다.

자기와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문제없다는 사람의 현실성과,

이웃의 어려움도 자꾸만 눈에 밟히는 사람의 현실성이 다를 테며,

당장 세상을 뒤엎자며 혁명을 외치는 사람의 현실성과,

세상은 무슨, 나 하나를 변화시키면 족하다는 사람의 현실성은 또 다를 테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현실'이 있다.

13/10/02

* 김교빈 외, <기학의 모험1>에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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