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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학의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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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와 불교의 허무는 공허(空虛)와 동일한 의미다. 최한기는 공허와 허무 모두 우주 안에 충만해 있는 기의 실재성과 근원성을 모르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곧 세계는 기라고 하는 보편적인 요소에 의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허무가 아니라 실유다. 그는 마음과 세계가 겉보기에 허무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기가 충만해 있는 실유라는 입장을 취한다. 가령 마음이 영명한 작용을 하는 것을 허라고 하거나 몸이 죽은 다음에 돌아갈 곳을 무라고 하는 것은 기를 모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나 죽은 뒤에 돌아가는 곳이나 모두 천지의 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한기에게 기란 세계의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원인이다. 현상적인 세계의 실재성과 변화 가능성은 기라고 하는 실제적인 작용력을 통해 긍정된다. 만일 기가 없다면, 세계와 우주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기는 진정한 실재이며, 세계의 수많은 존재와 사물은 기의 다양한 양태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는 흔히 유일신 종교에서 믿는 것처럼 인격적인 주재자로서 작용하지는 않는다. 현상적인 세계 전체가 기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를 초월하는 창조주가 따로 설정될 필요가 없다. 결국 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불변의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변화하는 현상계의 원리인 셈이다."*

13/09/29

* 임부연, <정약용&최한기: 실학에 길을 묻다>에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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