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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 명구절

우리 가문의 영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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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9월 2일 일본의 군함 운양호가 서해안을 북상하여 인천앞 영종도 앞에서 난동을 부렸던 사건을 우리는 국사교과서에서 기억하고 있다(운양호 사건). 그 결과 그 이듬해 2월 조·일 양국간에 강화도조약의 조인이 성립되었고 이것은 조선역사에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라는 불행한 망국길의 첫 신호가 되었다. 이에 최익현이 척사소를 올리고 강화조약교섭을 반대하여 흑산도에 유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바로 그 때, 최병대라는 조정의 시종지신(侍從之臣)도(1862년에 문과에 급제) 상소를 올려 강화를 빙자하여 군비를 철회할 수는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주변의 대신들이 탄핵을 하여 그를 멀리 유배시켰다. 귀양길에 오르는 최병대를 전송나온 노부가 있었는데, 그 늙은 아버지의 얼굴엔 난색끼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의연한 자세로 귀양가는 아들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네가 문장을 배워 문장으로 죄를 얻을 수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 가문의 영예로다. 인간세의 화복이란 그리 마음쓸 바가 되지 못한다."」*

이 노부가 바로 기학(氣學)으로 조선 철학사를 개벽한 혜강 최한기 선생이다. 당시 나이 74세였으며, 이듬해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다. 귀양 보내는 늙은 아비는 정작 의연한데, 나는 왜 이리 아버지와 아들이 의젓하게 헤어지는 모습에 이토록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모르겠다. 

13/09/26

* 도올 김용옥, <혜강 최한기와 유교>에서 인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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