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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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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의 사유가 종종 보여주는, 광박하기는 하나 그리 심오하지는 못함, 명료하기는 하지만 단순함, 치열하기는 하나 정밀하지는 못함, 성실하고 진지하기는 해도 내적 성찰력이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음 등등의 특징은 그가 '중심'의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기만 했을 뿐 그것과 씨름하면서 그것을 넘어선 것은 아닌, 다시 말해 변증법적 지양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 박희병

좋은 지적이다. 특히 『기학』에서 중언부언이 많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한기가 조선의 '중심' 사상 전체와 대결하려 했으면 기학의 독특하고 방대한 체계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때로는 기존 학문을 '일소'에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나는 그가 기존의 잡다한 이원론 철학들을 기일원론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내적 성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그가 최초는 아니지만). 나머지는 후학들의 몫일 것이다. 

사실 나는 여전히 유가 내부로 한정한다면 심학(특히 양명학)을 기학보다 좋아한다. 심학은 '깨달음'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뿐 아니라 이론 자체가 굉장히 열린 체계이기 때문이다. 두 이론이 하나로 회통하면 좋겠다. 최한기는 심학을 배척하고 있지만, 나는 심학과 기학이 매우 친화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나는 『기학』을 읽으면서 그 책의 궁극 개념인 '천인운화'를 양명학의 '양지'로 바꿔 읽어보았는데 거의 위화감이 없었다. 

그렇다면 기학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무엇인가? 허무(虛無)를 철두철미하게 제압하고 있다는 것. 유가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더욱 철저하다.

13/09/28

* 박희병, <운화와 근대: 최한기 사상에 대한 음미>에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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