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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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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달라져서 삭제했던 글. 레트가 불행한 남자고, 애슐리가 행복한 남자라고 단언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걸렸었다. 과연 그럴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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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윌키스. 남부 청년들이 스칼렛의 매력에 빠져 다들 그녀에게 잡아 당겨지고 있을 때에도 그는 휘청거리지 않았다. 스칼렛이 그에게 사랑을 요구할 때에도 그는 스칼렛의 본성을 꿰뚫고 있어 많은 남자가 갈망하는 그 여자의 사랑을 정중히 거절할 줄 알았다. 남부 사람들이 소리 높여 전쟁을 외치고 있을 때에도 그 전쟁이 무익한 것임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원치 않는 전쟁이었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자신의 몫을 다했으며 전쟁 가운데서도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내에게 편지로 설명하며 성찰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포로로 잡혔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끝내 먼 거리를 귀환해 집으로 돌아오는 투지가 있었다. 남부 사람들이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자신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아는 통찰력이 있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 기다리고 있는 뉴욕에 갈 수 있었으나 아내 멜라니의 부탁을 존중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남부에 그냥 머물러 있는 선택을 감내할 줄도 알았다. 물론 그는 아내 멜라니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약한' 남자였지만, 그것은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약함'이었다.** 

애슐리와 비슷한 깨달음을 동시에 공유했지만, 성향은 전혀 다른 한 남자가 더 있었으니 그는 레트 버틀러.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을 때마다 캡틴 버틀러의 자유분방함, 독립심, 기민함, 야성, 위기에 강해지는 정신력에 질투를 느껴왔다. 반대로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기엔 힘이 부족한 유약한 지식인으로 남부 사람에게 여겨지는 애슐리가 행여나 내 모습일까 늘 싫고 두려웠다. 그러나 레트는 자기가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언제나 다른 남자에게 가 있어 늘 불안해하다가, 끝내 그녀에게 온전히 사랑받지 못해 결국 사랑의 불꽃이 내면에서 꺼져버린 불행한 남자였고, 애슐리는 자신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주고 보아주고 정성을 쏟아주는 여자와 함께 서로 신뢰하고 헌신하며 사랑을 만들어나가고 험한 세상 서로 의지해 나갈 수 있었던 행복한 남자였다. 이제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새롭게 읽는다. 애슐리는 유약하지 않다.

* Mitchell, <Gone With the Wind>를 읽고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내는 편지>; <에콜로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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