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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에서, 학생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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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대공분야 수사기관 요원들의 인간형은, 아까 말한 대로 그들은 한마디로 사디스트라니까! 인간을 벌레처럼 학대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성적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성적 쾌락을 느끼는 병적 인간들을 사디스트라고 하잖아요? 사디스트가 아니면 인간을 그렇게 벌레처럼 대할 수 없어요. 적어도 생명과 감정과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상대를 그렇게 원수처럼 취급할 수가 없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교육수준이니 뭐니 말하기 전에, 한국의 반공주의에 첨병에 섰던 각종 대공기관 종사자들은 예외없이 사디스트라고 생각해. 그네들은 구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간형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말하면 그들도 광적 반공주의와 그 체제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도 존재론적으로는 '소외된 인간'이에요. 그들이 학대하는 피의자보다 더 소외된 존재지. 극우반공체제란, 그 속에 존재하는 모두를, 누구 가릴 것 없이 '비인간화'하는 체제요. 그런 뜻에서 '반인간' '반생명'적이고 '반윤리'적 체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임헌영) 사건을 맡은 책임자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리영희) 기억하지 못해요. 백기영이라는 조금 젊은 사람이 기억나고. 반장은 김 무엇인데,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인간형 속에서는 백기영이 조금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나보다 몇 십 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몇 번이고 까무러치는 상태에서, 고문한 그 조사관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그 날짜와 시간까지 대충 재생해서 훗날 그들에 대한 법적 징계를 가능케 했던, 서울대 학생 김근태의 초인간적 능력에 오직 감탄할 뿐이에요. 그 고문을 당해본 사람만이 알지만, 생명이 들고 나고 하는 극한 상황에서 김근태같이 적의 정체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초인간적이라. 나는 그런 점에서는 김근태는 장차 큰 일을 할 만한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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