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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저택과 우주에서 온 색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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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의 금단의 저택은 가장 거대한 공포에서조차 아이러니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이러니는 때론 사건에 직접 침투하지만, 때로는 우연한 방식으로 사람과 장소에 개입합니다. 이 아이러니의 정서가 작품의 핵심 테마인 거 같습니다. 


첫번째 아이러니는 애드거 앨런 포가 작품의 무대가 되는 금단의 저택 근처를 산책했었다는 겁니다. 물론 러브크래프트가 지어낸 상상인데요, 러브크래프트는 요즘 말로 애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주를 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두번째 아이러니는 호기심은 늘 공포를 이기며, 또 그 호기심은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는 겁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시시하고 불완전했던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는 달리, 새롭고도 강렬한 호기심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 최초의 폭로는 철저한 조사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내게 파국을 안겨준 끔찍한 탐색으로 끝을 맺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가장 과학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가장 사태의 진실을 늦게 알아차리고, 가장 미신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오히려 사태의 본질을 일찍 깨닫는 다는 점입니다. 하녀 앤 화이트는 뭔가를 알아차리고 지하실 바닥을 수색해야 한다고 집요히 주장하는데요, 그 주장 덕분에 해고 당합니다. 반대로 주인공은 삼촌이 이상한 꿈을 꿨을 때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저 자기 불안감이 투영된 것일 뿐이라고만 해석합니다. 


작품 최고의 순간은 주인공이 저택의 역사를 1600년대까지 추적해간 장면입니다.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한 가족을 사람들이 혐오하고, 차별합니다. 거기에 이 가족에 대한 온갖 억측과 괴소문까지 나돌게 되었고, 결국 폭도들이 가족을 살해합니다. 금단의 저택은 비로 이 참담한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주민의 한맺힌 원한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품은 이렇게 끝납니다.

"으스스한 그 저택의 기이함은 지금까지도 나를 매료시킨다. 그곳을 허물고 천박한 상점이나 세속적인 아파트를 세운다면, 아마 나는 안도감과 함께 기묘한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정원에 있는 불모의 고목들도 작지만 달콤한 사과를 맺기 시작했고, 비틀렸던 작년의 그 가지마다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그 다음은 우주에서 온 색채를 살펴볼까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기획하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큐브릭과 SF 작가 클라크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함께 만나 외계인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토론을 했었다고 하는데요, 큐브릭은 외계인의 모습이 인류와 닮았을 것이라 생각했고, 클라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으며, 세이건은 클라크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이건은 인간과 다른 형태로 외계인을 표현하는 것에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건 그것은 지구인의 한계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안한 해결책이 외계인을 영화에서 묘사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우주에서 온 색채가 기가막힌 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외계에서 온 미지의 존재를 그저 색채로만 묘사한 겁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아리송했습니다. 영문 제목도 The Colour Out of Space인데요, 아니 대체 우주에서 무슨 색깔이 왔다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 무릎을 치며 극도로 추상적인 색채로만 우주적 존재를 표현한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실제 러브크래프트도 한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읽어볼까요?


"제가 창조한 대부분의 괴물들은 제가 원하는 우주적 주제 의식을 만족스럽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끼는 '우주에서 온 색채'에서 색으로 표현된 존재만은 예외입니다."


결국 우주에서 온 색채는 러브크래프트가 전하려는 주제 의식을 궁극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크툴루의 부름 같은 작품도 훌륭하지만, 여전히 크툴루의 공포는 실체적이고 좀 지구적입니다. 그에 반해 우주에서 온 색채는 추상적이고 그래서 더 우주적입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 러브크래프트를 차용한 작품들은 대개는 크툴루 신화를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적 존재에 서열도 나누고, 괴물의 흉칙한 모습도 자세히 묘사하고, 세계관도 자세하게 짜고 말이죠. 그게 러브크래프트의 대중화에 기여했겠지만, 속류화에도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진짜 비의는 우주에서 온 색채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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