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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거의 반년 만에 라디오를 켰다. 성시경이 진행하는 FM 음악도시가 나왔다. 사랑이 고픈 고양이 글을 올린 후였는데 공교롭게도 첫 노래는 박효신의 "사랑이 고프다"였다. 매주 금요일은 '김혜리의 영화 사람을 만나다' 코너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역시 공교롭게도 오늘의 영화는 <500일의 썸머>였다.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인연이 깊은 영화로구나.

김혜리 기자는 썸머를 이렇게 느꼈다고 한다. 영화에서 평범하다고 묘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예쁜 여자 어드벤티지를 자연스럽게 걸치고 있는 여자.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그렇기에 구차한 입장에서 연애를 안 해보았다. 구차한 연애를 할 필요도 없고, 그러한 처지에 처하지도 않는 것이다. 또한 남자로 하여금 미친 짓도 서슴없이 하게 만드는 여자다.

썸머는 자신의 장르가 확실한 여자다. 썸머를 만날 당시의 톰은 그렇지 않았다. 남의 장르에 맞추려다 보니 뭘 해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다. 김혜리 기자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영화 '졸업'이다. 얼마 전에 나는 이 블로그에다가 영화 '졸업'의 엔딩이 주는 의미에 대해 올린 바 있다. 김혜리 기자 역시 그 글에서 말한 바와 똑같은 해석을 제시했다. 톰도 썸머와 헤어지고 나서는 '졸업'의 진짜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톰의 직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톰은 '좋은 생각' 류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적힌 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톰은 썸머와 헤어지고 이 회사를 그만둔다. 진정한 '졸업'이다. 그럼으로써, 관습적인 사랑 이데올로기와 결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톰의 성장 영화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후, 김혜리 기자가 영화를 보는 팁으로 알려준 것은 영화의 배경이다. LA라고 한다. 김혜리 기자는 이 영화로 LA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많았구나 하고. 

김혜리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 부분은 이것이다. 김혜리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썸머는 모두와 규정짓지 않는 관계를 맺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톰과 관계를 규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성시경은 원래 썸머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임자를 만나면 정신 못 차리게 되어 있다고 웃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들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게 사랑하고 싶으랴. 누구나 쿨하고 싶지. 그러나 관계의 성격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고, 그렇지 못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 다수다. 억울해할 것 없다("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을까?" 참조). 톰이 성장했듯, 아픔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니까.

아래는 김혜리 기자가 어제 선곡한 첫 노래. "love story"가 아닌 영화, <500일의 썸머>와 어울린다.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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