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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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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랑 통화하다가 "쌍년"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웃었다. <건축학 개론>에서 승민이 서연을 기억하는 방식도 "쌍년"이었다. 극장 관객이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난다. <500일의 썸머>도 "Bitch"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남자들 마음속엔 '첫사랑'이 아니라 '쌍년'이 하나씩 들어 앉아 있는 걸까?(웃음) 클래식 음악 사이트 <고클래식>에 좋은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시는 장정호라는 분이 있다. 그분이 "쌍년"이라는 제목으로 재미난 글을 하나 올렸다. 그 마지막 부분을 옮겨 본다. 

"승민이 쌍년 서연을 다시 만난 것은 15년 후의 일이다. 승민은 건축가가 되었고 서연은 이혼녀였다. 늦게 다시 만났지만 그들에겐 이미 깊은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질투도 사랑도 이제 많이 식었다. 그러나 쌍년으로 기억되는 그 날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서연의 집을 지어주고 떠나기 직전 그들은 비로소 (제대로 된)키스를 한다. 마음의 잿더미 속 불쏘시개와 쌍년의 기억은 그렇게 잦아든다. 승민은 미국으로 떠난다. 순정한 꽃 한송이가 마음속에 툭, 목을 꺾는다.
 
며칠 전 나는 다소 취했다. 나에게도 쌍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몹시 헷갈렸지만 안그래도 입이 근질근질 하던차에 술도 마셨겠다  산길을 걸으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외치듯 “쌍년 쌍년”하고 소리를 두 번이나 질렀다. 그러나 맞들려오는건 가는 잠이든 고라니가 깨어  도망치는 소리만 부끄러웠다. 그래서 동갑나기 친구에게 ‘쌍년’ 이렇게 딱 두자만 문자로 찍어 날렸다. 물론 그 친구는 쌍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마냥 착한 년인데 세상에 분풀이 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하라던 기억이 나서 그렇게 술김에 찍어 보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건 우리 각시였다. ‘쌍년’을 찍어 보낸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친구 ‘쌍년’은 내가 하는 짓이 귀여워 죽겠다고 난리법석이고 각시는 자신과 같은 공주에게 ‘쌍년’이라 했다며 분노에 치떨었다. 그 날 밤에 나는 쌍놈이라는 말과 함께 손톱으로 무수하게 뜯겨야했다."*

1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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