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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넷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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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보인다: 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지난 밤들 요약: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폭력은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 그곳도 넘어야 한다. 단지 문자를 쓰는 것'만'이 특권적으로 권력, 나아가 혁명에 속한다는 생각을.


루터파는 자신들을 뭐라 불렀을까? 근대인,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라 불렀다. 중세라는 호칭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든 것도 루터파. 그런데 14세기부터 16세기, 즉 루터가 출현하기 이전 오컴의 윌리엄을 필두로 하는 후기 스콜라학파도 자신들의 유명론을 가리켜 '근대의 길/방법'이라 불렀다. 또 있다. 12세기 중세 해석자 혁명에 참가한 법학자, 신학자 들이 이미 자신과 자신의 시대를 '근대'라 불렀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근대라고 부른 것이다. 루터도, 오컴의 윌리엄도, 12세기 법학자도. 


사람은 자신을 새롭다고 믿고 싶어 하는 존재고,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 오늘날 포스트모던이니 뭐니 하는 건 창피한 이야기.


11세기 중반부터 12세기 중반의 100년, 유럽에 결정적인 비연속성이 있었다. 교황 혁명 또는 중세 해석자 혁명. 이는 최초의 '근대법', 당시의 호칭으로 하면 '새로운 법'을 낳은 운동이었다. 


11세기 말 피사의 도서관 구석에서 한 무더기의 책이 발견된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가 편찬한 '로마법 대전' 전 50권이 '발견'된 것. 이 위대한 법전은 그때까지 전혀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어 누구 한 사람 돌아본 사람이 없었다. 6세기부터 11세기 말까지 600년 가까이 완전한 망각에 묻혀 있던 것.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찾아내 '들고 읽었'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믿기 힘든 노력을 투입해. 그들은 읽었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읽은 것은 굽힐 수 없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의 본체'.


여기서 '새로운 법'이 성립. 교회법뿐만 아니라 이 '혁명'에 자극받아 세속법, 예컨대 군주법이나 제국법, 봉건법, 장원법, 도시법, 상법 등도 차례로 고쳐 쓰인다. 이는 '그라티아누스 교령집'으로 집대성 된다. 혁명의 결정적 승리. 이를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혁명의 과실인 새로운 법을 주축으로 한 '유럽 전체를 통일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즉 '교회'가 성립한다. 이것은 다시 근대국가의 원형이 된다.


'교회법'은 성직자 집단 내의 내규가 아니라, 세례, 교육, 구빈, 혼인, 가족, 이단이나 마술의 금지, 성범죄, 고아·과부·병자·노인의 보호 그리고 신탁제도, 계약 문제 등 대부분의 민법 사항이 그 관할 하에 있었다. 가족법을 중심으로 한 체계, 그것이 교회법이고 (형법보다) '상위'에 있는 공통법. 이를 변혁하지 않고는 혁명을 성취할 수 없다.


혁명은 아이의 삷을 '수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의 본질이란 '재생산=번식을 보증하는' 것. 즉 아이를 낳아 기르는 물질적·제도적·상징적 준비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국가의 형식이야말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하고, '문학'의 혁명에 의해 전복되어야 할 것.


왜 유엔은 공중에 붕 떠 있고, 세계정부는 성립하지 않는가. 재생산하는 원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원리, 즉 '계보 원리'를 맡고 있지 않아서. 그러나 로마제국과 중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혁명의 힌트를 준다. 보편 공동체로서의 원리를.


근대국가의 원형은 이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성립한 중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다. 교황이 바로 최초의 주권자. 교황은 선거로 뽑히고 법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선거에 의한 주권자의 선출, 그리고 법에 의한 주권자의 구속, 이런 생각도 당연히 이 혁명에서 유래.


관료제의 기원도 교황청. 성직자의 위계제도, 교권제도야말로 근대국가의 정수인 근대 관료제의 기원. 그리고 공의회야말로 최초의 입법의회며, 이것이 근대 의회 제도의 출발점.


법학이 성립함으로써 실증주의가 등장. 법학은 유럽의 첫 '과학'. 


중세 해석자 혁명은 텍스트 고쳐 쓰기의 혁명. 담담하고 극적이지 않은. 수많은 신학자, 법학자가 밤낮으로 홀로 책장을 넘기고 사전을 찾고 판례를 조사하여 법문을 고쳐 쓴다. 이렇게 담담하고 수수한 작업에서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작업 자체가 바로 혁명. 이것이 12세기 혁명의 위대함.


텍스트는 문서가 아니어도 좋다. 문학은 종이에 쓴 것이 아니라도 좋다. 지브릴이 무함마드의 심장을 꺼내 씻어도 그것은 문학이다. 우리의 텍스트는 넓다. 우리의 규칙은 넓다. 우리의 예술은 더욱 넓고 길다. 우리의 법은 춤추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에는 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고 소동을 벌이면서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문학 따위는 결국 경제 과정에 좌우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문학보다는 오히려 공학이다, 과학이다, 라고 말하면서 문예비평이나 소설을 써서 일당을 벌려는 작자들이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문학부 교수이거나 한다. 문학부에 속한 학과를 나왔으면서 문학이나 철학 따위는 무력하니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로비 활동을 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소롭기 짝이 없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먼저 그만두라.


17/01/06


*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넷째 밤에서 발췌. 재구성. 리뷰. 요약.



2017/01/04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첫째 밤

2017/01/04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둘째 밤

2017/01/05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셋째 밤

2017/01/07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다섯째(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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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 프로필사진 지나가던 2021.11.09 10:40 만인의 행복은 바퀴들을 끊임없이 돌아가게 해주지만, 진실과 아름다움은 그러질 못해 -멋진 신세계-

    문학과 철학은 늘 무력했고 앞으로도 그러할테지만 극소수의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도록 읽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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