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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안전하다는 말은 얼마나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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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자신들이 생산한 위험을 처리하면서 '현실성 위기'에 빠지는 것도 기술자와 과학자가 소유한 위험 진단에 대한 독점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안전하다는 것과 '십중팔구 안전할 것이다'라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이 체르노빌 이후에야 통용되는 진리는 아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다. 기술과학은 항상 개연적인 안전에 대한 재량권만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진술은 설령 내일 두세 기의 핵발전소가 폭발해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이다. [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사회』 중]


정량적 계산이 주는 신뢰감은 그런 정량적인 평가가 객관적일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태도에서 나올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객관성이라는 버팀목에 의지해서 도덕적으로는 다소 무책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객관성에 대한 이념이 과학을 도덕적으로 무능력하게 만든 이유를 후설은 전통 학문체계에서 '형이상학'이 맡아왔던 역할을 넘겨받을 학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았다. 학문의 근본 동기를 고려할 때, 형이상학의 역할은 모든 개별 과학의 가능성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는 학문의 존재 이유가 포함된다. 그런데 근대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이념으로 형이상학의 학문성을 제거하자, 학문의 존재 이유를 성찰할 수 있는 장소도 사라지고 말았다.


실증 과학이 하나의 지도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측정(계량) 가능한 것들만 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과도한 실증성은 학문과 그 학문을 수행하는 주체에게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심해도 된다고 인증해버렸다. 이로써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과학자 본연의 일이 아니라, 개개인의 철학적 취향의 문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16/05/17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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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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