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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역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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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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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계몽주의] 생각의 바닥에는 사회의 발전 양상을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진보의 이념이 놓여 있었다. 이런 점에서 19세기 말에 극단적인 반실증주의 경향을 조심스럽게 바라본 헨리 휴스의 진단은 옳았다. 그에 따르면 본래 "실증주의는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의 문제는 쉽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 주지주의였다." 가령 다윈의 이론이 자신의 실증주의와 잘 맞을 것으로 생각한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주의를 옹호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결과는 하나의 역설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다윈주의의 영향 밑에서 실증주의적 신조는 그 합리주의적 특색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곧 유전과 환경이 인간 행동의 주요한 결정 요인으로서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을 대신하게 되었다. (···) 실증주의의 궁극적인 아이러니는 극단적인 주지주의로서 출발한 것이 결국은 철저한 반주지주의 철학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헨리 휴스, 『의식과 사회』 중]


사회적 환경과 교육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어떤 특정한 이상향의 시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념은 인간 고유의 개성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근대 계몽주의를 추동시켜온 인간이성의 자율성마저 함께 소거해버렸다.


본래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계몽주의가 일종의 강압적인 제도로 귀착된 것은 고도의 효율성을 보장했던 기계론적 합리성이 하나의 도식으로 변질됨으로써 급변하는 당대의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1880년대가 종말에 가까워짐에 따라 젊은이들이 질식할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정신생활에서만이 아니었다. 숨김없는 사실로서 그것은 숨 막히는 10년"이라고까지 말할 정도가 되었다.」*


16/05/15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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