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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작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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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바꿨다. 5년을 넘게 쓴 녀석이었다. 이제는 버튼이 거의 눌러지지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일반폰으로 바꿨다. 폰에 담긴 문자들과 주소록을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지우는데 내 마음도 꾹꾹 눌리듯 짠했다. 지난 5년,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는 다 이 친구가 함께 했던 게 아닌가. 알바하던 때, 같이 일하던 어여쁜 아가씨를 향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입력한 문자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것도 이 친구였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 그녀에게서 "한강 다리를 지나고 있어요. 야경이 예뻐요."라는 문자를 날라다 주었던 것도 이 친구였다. 지리산 천왕봉, 천국에서나 볼 것 같은 운해 위로 짙은 안개가 갑자기 걷히며 이글이글 찬란한 해가 불쑥 떠오를 때 그 모습을 남겨주었던 것도 이 친구였고, 또 그 장면을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것도 역시 이 친구였다. 차갑고 어두운 시절이 올 것임을 예고하던 그 전화를 듣고 있을 때, 절망으로 아득해지던 그 순간을 내 손을 잡고 함께 해주던 것도 이 친구였다. 수명이 거의 다하여 헐떡거리는 몸으로도 사랑에 빠진 내 마음과 달콤한 말들을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면서까지, 그러다 전원이 끊어질 때까지 감당해주고 전해주던 것도 이 친구였다. 이 외에도 숱한 추억을 이 친구와 함께했음을 더 말해 무엇하랴. 아, 친구의 긁히고 상한 몸이 꼭 지난날의 내 마음을 비추는 듯하여 뭉클하구나. 안녕, 친구여!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를 보내며, 내 삶의 한 시기도 함께 떠나보내네. 

1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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