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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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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모험러

「못 가진 자들의 최신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격 미달' 소비자들에게, 쇼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충족되지 못한 삶을 나타내는 불쾌하고 역겨운 흔적이며 자신이 보잘것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표지이다. 단순히 쾌락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적 존엄 부재의 표지이다. 사실상 삶의 의미 부재의 표지이고, 결국은 인간성의 부재 그리고 자기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그 밖의 근거 부재의 표지이다.


자격을 갖춘 신도들에게 슈퍼마켓은 섬김의 사원이자 순례의 목적지다. 자격 미달을 이유로 소비자들의 교회에서 파문을 선고받고 쫓겨난 사람들에게, 슈퍼마켓은 자신들을 내쫓은 땅을 차지하고서 도발을 하는 적의 전초기지이다. 엄중히 경계되는 성벽은 상품들에 대한 접근을 막고, 상품들은 남은 신도들을 추방의 운명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 조지 부시라면 당연히 동의할 일이겠지만, 그 성벽은 추방된 사람들이 '정상적 상태'로 되돌아가고 신도석에 앉아본 적도 없는 젊은이들이 입장하는 것을 막는다. 강철 창살과 블라인드, CCTV, 제복을 입고 출입구에 서 있는 경비원들, 건물 내부에 잠복한 사복 입은 요원들은 전쟁터의 분위기, 진행 중인 교전의 분위기를 더한다. 무장을 하고 철저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가운데 적'의 성채들은 원주민들의 몰락과 열등함, 고통, 굴욕을 날마다 상기시킨다. 그것들은 다가가기 어렵게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로, "덤벼봐! 감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라고 큰 소리로 도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15/08/12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안규남, Trans.).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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