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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윤리가 사라지면 신뢰와 책임 없는 이익 추구만이 남는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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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윤리가 사라지면 신뢰와 책임 없는 이익 추구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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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일에서 공동체가 하는 역할을 꼭 손으로 하는 기술노동에만 제한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가상의 주택금융중개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먼저 예전 은행원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19세기 미국에서는 은행이 영업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지점을 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맡기려면 은행을 신뢰해야 했고, 은행원은 대출해주기 전에 돈 빌리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해야 했다. 은행 업무의 역사를 연구한 어느 역사사회학자가 쓰듯이, 일반적으로 "은행원이 얻는 이익은 더 큰 지역사회의 이익과 하나이자 동일한 것"이라고 믿어졌다. 우리는 젊은 부부 앞에 앉아 그들의 신용도, 즉 인격에 대한 견해를 갖기 시작한 은행원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의 성격은 공동체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은행원은 식료품점이나 철물점을 돌아다니면서 대출 지원자들의 성격에 대해 묻고, 이들의 이름을 이야기 할 때 가게 주인이 어떤 말투와 몸짓을 했는지에서 미묘한 단서를 포착해내며, 그들의 신용 기록을 조회해볼 것이다. 만족스럽다면 그는 역시 같은 지역사회에 속한 동료 은행원에게 이를 이야기하고, 대출이 이루어진다. 은행원과 부부 사이에 앞으로 30년은 지속될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은행원은 선행을 했다는 느낌을 받고, 분별력 있는 관찰력과 다양한 사람의 행동 방식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이 선행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신중을 기한다. 그의 일은 그가 지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J. P. 모건의 대표였던 토머스 라몬트가 1923년에 자신의 동료들에게 말했듯이, 은행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단순히 정직함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보다는 "지역사회 전체가 은행원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직한 관찰자가 되고, 금융·정치·사회·정치 방면의 상황을 계속 주의 깊게 연구해서 모든 구성원들보다 넓은 식견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이제 2005년경 어느 주택금융중개인의 현실을 보자. 부재 자본주의(absentee capitalism) 아래에서 그의 일은 매우 다른 특성을 띤다. 확보해둔 담보가 대출해준 은행(전국적인 은행의 지점)에 의해 다른 누군가한테 팔려나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대출 지원자의 신용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은행 역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에는 관심이 없다. 은행의 관심은 대출을 해주고 받는 수수료에 제한된다. 이 담보물들은 월스트리트에서 한데 묶이고, 묶인 꾸러미들은 자산유동화를 통해 보다 일반적인 형태의 '주택대출'(housing debt) 같은 극히 작은 조각들로 변형되어, 중국 정부와 다른 투자자들에게 팔릴 것이다. 원래 주택금융중개인과 대출자가 서로 마주앉았을 때, 이들의 첫 대면은 신뢰의 문제 같은 도덕적 주제로 가득 차 있었다. 2005년에도 이들은 분명 처음에는 이렇게 만난다. 그저 중개인이 상대방에 대해 직감적으로 알더라도 이 정보가 객관화 과정을 통해 폐기될 뿐이다. 이것은 의도적인 폐기다. 실제로 대출을 해주는 은행은 월스트리트의 투자기관들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대출, 즉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자신의 생계를 증명하기는커녕 소득이나 자산의 소유권을 주장할 필요도 없는 대출을 만들어내라고 재촉하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대출서류를 직접 작성하는 주택금융중개인에게 이것은 특정한 마음 상태를 요구한다. 그는 신중한 목소리를 침묵시킨 채, 자신만의 판단과 인식을 유보한다.


이 시스템은 왜 주택금융 전문가를 어리석게 만들려들까? 다시 한 번 2005년이라고 가정해보자. 전례 없는 자본의 집중이 발생했고, 이 공동자금은 알맞은 집을 찾아서 수익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 투자자들 사이에 주택저당증권에 대한 끝없는 욕구가 생겨났다. 게다가 대출기관과 투자자 사이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수료는 월스트리트에 호황을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대출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의 주택금융중개인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출을 해주고 큰돈을 번다. '신용' 개념의 가장 핵심에 있는 판단이 제거되고, 부정으로 가득 찬 중개인의 일은 이제 공동체의 부재로부터 나온 무책임에 입각한 것이 된다. 설령 그가 수탁자로서 의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의 경쟁자들이 하나같이 무책임으로 돌진하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런 의식을 갖는 게 불리하다. 그가 하는 일은 그를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그의 가장 좋은 면을 손상시킨다. 그러니 이제 일과 나머지 생활의 분리가 불가피해진다. 그는 휴가 때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고 재충전되는 기분을 느낀다. 다음 해 여름에는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생태관광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가 고작 몇 주 동안이나마 다시 한 번 감정과 행동이 연결된 이해 가능한 도덕적 질서 속에서 살 수 있는 곳은 바로 이런 제2의 삶 속 고립된 영역에서다.」*


15/04/20


* 매튜 크로포드. (2010).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손으로 생각하기. (정희은, Trans.).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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