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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환상인가 실재인가?

모험러
「―인간은 왜 그런 착각(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만들어졌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이 없다면 '나'와 '자아'가 연결될 수가 없다. 매 순간마다 수백 가지 다른 이유들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나'라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가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을 했다는 스토리를 만들면 그 스토리를 통해 연관이 없는 점들을 연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점들을 연결시켜주는 선이 결국 '나'라는 자아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 자체도 사실은 착각이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김대식(뇌과학 전공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중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유 의지는 개념적으로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환상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다. 우리의 의지는 앞선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므로 우리는 그 원인들에 책임이 없거나, 그 원인들은 우연의 산물이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 샘 해리스(신경과학자)

「오늘날 많은 뇌 연구자는 "각각의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뿐 달리 무엇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뇌가 명령하면 단지 그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 프란츠 부케티츠(생물학자)

「인간의 자유는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생물학적 조건들과 구분되는 객관적인 현상이며, 오직 한 종, 우리에게서만 나타난다. ... 인간의 자유는 우리 종보다 나이가 젊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은 수천 년 ― 진화사로 보면 눈 깜박할 시간 ― 밖에 안 되었지만, 그 짧은 기간에 그것은 산소가 풍부한 대기의 형성이나 다세포생물의 출현 같은 엄청난 생물학적 전환 사례들처럼 현저하게 이 행성을 변모시켜 왔다. 자유는 생물권의 다른 모든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진화해야 했으며, 지금도 계속 진화한다. ... 자유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그것을 보존하고 여러 천적들로부터 그것을 보호하는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다.」****

- 대니얼 데닛(인지과학자)

「신경 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힘을 합쳐 수십 년 노력한 끝에 뇌가 어떻게 우리를 의식 있는 존재로 만드는가 ― 어떻게 뇌가 감각, 느낌, 주관성을 일으키는가 ― 에 관해 유일하게 도출된 안은 한 가지 뿐이다. 어떤 단서도 없다는 것.」*****

- 알바 노에(인지과학자)

극과 극을 통한다더니, 유물론의 첨단에 서 있는 신경과학(뇌과학), 진화생물학 관련 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이 자아와 자유의지는 한낱 환상일 뿐이라는 '강성 결정론'인 것이 흥미롭다. 이는 세상은 마야(환상)이며 우리는 카르마(업)에 절대적으로 속박된 우주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힌두 철학 계통 신비주의자들의 절대적 관념론과 거의 같은 결론이다. 이를테면 샘 해리스는 강연 영상에서 왼손과 오른손 중 어느 손을 들까 고민하다가 오른손을 내밀었을 때, 그것조차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라마나 마하리시의 제자 하나가 그 앞에 부채를 내려놓으면서 '지금 제가 부채를 내려놓을 것이라는 사실도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마하리시가 '그렇다'고 답한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자유의지'를 아무 요소에도 영향받지 않고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런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샘 해리스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결정을 이루어낸 무수한 선행원인을 추적할 수 없으므로, 바꿔말하면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선행원인이 너무 무수하므로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이 블로그 글을 여기까지 읽다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만 읽고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거나, 계속 읽거나. 전자를 선택한다 했을 때, 그 선택이 있기 위해 일단 150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났고, 수백만 년 전에 인류의 조상이 탄생했고, 당신의 고조부가 특정 유전자를 당신에게 물려줬고, 당신이 5살 때 어떠어떠한 경험을 했는데, 그 외 수많은 것들이 다 합쳐져서 전자를 뇌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택했고, 당신은 뇌에 떠오른 그 선택을 그냥 집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뇌 속에서는 후자도 선택의 하나로 고려했을 테지만 왜 하필 후자가 아닌 전자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는 150억 년 전 우주의 불장난으로 숨을 쉬고 있는, 별의 먼지들에 의해 태어난 우주의 장난감들이다. 사실 높은 추상 수준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는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을 '의식'할 수 있다. 인간이 그냥 의식 없이 뇌 신경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자동기계여도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어떤 것'이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나'의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이 의식이며, 신비 중의 신비다.

샘 해리스나 부케티츠와 같은 신경과학자들의 모델(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스토리)에서는 세계에는 아무 의미가 없고, 행여나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해도 그것은 다 환상이며, 진화에는 아무 목적성도 방향성도 없으며, 인간에게는 생각의 자유, 결정의 자유, 행동의 자유가 없으며, 정신(의식)은 신경 프로세스에 불과하다. 그들의 이론은 기독교계의 '창조신학'이나 '지적설계론'을 주적으로 삼고 있다. 극단적인 이론을 상대하다 보니 똑같이 극단적이 되어 그들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부케티츠는 1억 5천만 년 전 중생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파충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운석 충돌과 화산 폭발이 없었더라면, 대규모 기후변화가 없었더라면 등등, ~ 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인류의 등장은 100% 행운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머지 이론은 다 왜곡이거나 오류거나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그의 뇌 속에 떠오른 그러한 일련의 가정들과 생각들이 '환상'이 아닌 '진실'이라고 대체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가 취합한 일련의 증거들도 그의 감각기관이 우주의 특정 형질만을 받아들인 것을 다시 그의 뇌 속에서 이차적으로 해석한 것(환상)일 뿐인데. 지적설계와 같이 모든 것을 '필연'으로 설명하는 이론도 기이하지만, 모든 것을 '우연'으로 설명하는 이론도 이렇듯 기이하다.

나의 모델(나의 스토리)은 이렇다. 우주의 역사, 진화는 의식이 깨어나고 성장하고 확대되는 과정이다. 즉, 우주가 자기 자신을 인식해나가는 과정이다. 우주도 '나는 누구인지'가 궁금하고, 또 자기 자신의 창조물을 구경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필연 속에서 수많은 우연이 허용된다. 인간의 욕망, 감각, 생각, 의지, 윤리, 문화, 관습, 사회 등의 일체 역시 우주 진화의 산물로, 모두 환상이 아닌 실재다. 인간들이 관념으로 만들어낸 서로 경쟁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 이론, 스토리들도 실재다. 다만 특정 시점에 어느 스토리가 주도권을 쥐고 물질 세계에 자신의 영향력을 관철해나갈지가 결정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에고(자아)도 환상이 아닌 실재다. 다만 서로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에고가 영원하다는 생각이 환상이다. 개별 유기체의 소멸과 함께 에고도 자연히 소멸한다. 오직 '의식'(영, 정신, 하느님, 신, 하늘, 알라, 브라만, 우주, 도, 기, 불법, 뭐라 이름 붙이든)만이 영원하다. 인간은 의식이 깨어나는 만큼만 자유롭다. 의식의 도약, 이것이 바로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의 도약이다. 인간(人間: 사이 간)은 좀비와 신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14/08/01

* 문화일보, 14-07-25, <파워인터뷰>[단독] "'가장 창조적인 5% 인재'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상"
** 샘 해리스, <자유의지는 없다>
*** 프란츠 부케티츠,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 대니얼 데닛, <자유는 진화한다: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
***** 알바 노에, <뇌 과학의 함정: 인간에 관한 가장 위험한 착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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