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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뇌 본문
Enlightenment, Self, and the Brain. How the brain changes with final liberation from Todd Murphy on Vimeo.
신경신학자 토드 머피의 강의 세 번째. '나'라는 개인의 실체가 있다는 느낌, 즉 '자아'의 감각은 뇌가 만들어내는 신경학적인 환영(hallucination)임을 설명하며 '무아'를 주장한 붓다의 의견이 과학적으로 옳았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나', 개인(individual)이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없다'이다. 깨달음은 바로 이 '나'라는 자아의 느낌이 소멸하는 과정이다.
강의는 뇌의 어떤 변화가 이런 과정을 만들어내는지 뇌 각 부위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통해 깨달음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붓다, 예수, 라마나 마하리쉬, 에크하르트 톨레 등 깨달음의 사례는 모두 이러한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극한의 어둠에서 극한의 빛으로 전환되는 갑작스럽고 극적인 깨달음뿐만 아니라, 서서히 뇌가 기쁨과 환희, 사랑을 향해 나가는 점진적인 깨달음도 가능하다.
재밌는 것은 깨달음이 곧 도덕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로 오쇼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쇼만큼 논란이 많고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갈리는 도인도 없을 것이다. 도 닦는 업계 불세출의 슈퍼스타는 슈퍼스타다. 어찌 되었건, 의식이 최상의 지복에 도달하는 것이 곧, 이상적인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깨달음은 끝(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예전 켄 윌버를 소개할 때 자세히 적은 적이 있다("에덴동산이여 안녕").
내 의견:
1) '나'라는 느낌, 자아감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환영'이 아니라 '실재'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물론 의식이 고양될수록 자아감이 사라지고, 깨달은 사람들이 우주적 의식을 획득하는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들의 개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했고 붓다는 "무아"라고 했는데, 둘 다 개성이 넘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아'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내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와 남, 나와 세상, 나와 우주의 경계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켄 윌버의 의견을 더 선호한다. 경계야말로 환영이다. 경계를 녹여가는 것이 수행이고,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이 깨달음이다.
2) 붓다가 윤회하는 연속된 주체의 개념을 포기한 순간 힌두교 전통의 윤회론은 붓다에 의해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 설령 삶이 계속되더라도 윤회하는 독립된 주체가 없으면 그것에 윤회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지구 상에 그 어떤 삶도 반복된 적이 없으며, 천상천하 전무후무 유아독존의 완전히 독자적인 삶만이 근원에서부터 지구로 등장했다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붓다는 워낙 윤회론이 상식인 문화권에서 가르침을 설했으므로 윤회론 개념을 계속 활용했던 것일 뿐, 윤회가 붓다의 핵심 가르침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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