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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가 죽음을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으로 바꿔 놓는다 본문
「의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을 저지하거나 늦추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런 의사의 사명이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사는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천수를 다한 환자에게도 끝까지 의사의 도움이나 의료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겨 자연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이라는 절차는 원래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살아 있는 매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죽음이다. 그 의미 있는 순간을 의료가 깊이 관여함으로써 죽음을 더할 수 없이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이란 원래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료가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라고 해야 맞다.
나는 유명하거나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서 잃을 것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게 전혀 없다.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 의사나 의로계의 고위직 인사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주장들을 이 책에 서슴없이 펼쳐놓았다. 이것이 평생을 환자들 곁에서 살았던 한 노의사의 도리이며, 스스로 자연사를 택하여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한 수많은 노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는 분명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살아있음'의 차원을 넘어 더 나은 삶,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라면 이제부터라도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 나카무라 진이치(노인복지시설 상근배치의사)
몸은 신비롭게도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되면 최후의 휴식을 위해 음식물은 거부하고 몸의 주인에게는 최후의 안락을 선사하다가 기능을 정지한다. 그러나 의료는 이 과정에 강제로 개입해 정지해야 할 심장을 강제로 뛰게 하고, 멈추어야 할 호흡을 강제로 쉬게 하고, 영양을 소진해야 할 몸에 강제로 음식을 투입하여 죽어야 할 노인을 죽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최후의 휴식은 박탈되고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삶이 조금, 아주 조금 연장된다. 고문이요, 학대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는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넓혀주고 자유롭게 해 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고수들을 위한 책이다. 생노병사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본인 혹은 가족이 떠나야 할 때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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