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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는 반드시 유(有)가 되어야 한다 본문

명문장, 명구절

무(無)는 반드시 유(有)가 되어야 한다

모험러

「그동안 우주론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들은 "대부분의 에너지가 빈 공간에 존재하고, 눈에 보이는 물질은 총에너지의 1퍼센트가 채 되지 않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입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평평한 우주"를 꾸준하게 지지해왔다.


이 모든 현상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무(無)는 유(有)로 변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이쯤에서 특별히 힘을 주어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주가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탄생했다는 주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과 점점 더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은 경험에 기반을 둔 우주론과 입자물리학이었다. 도덕을 논하는 철학이나 종교, 또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 어떤 생각도 우주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스티븐 호킹과 그의 동료 짐 하틀(Jim Hartle)은 무(無)에서 시작된 우주의 경계조건을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1. 양자 중력의 세계에서 우주는 무(無)로부터 탄생할 수 있다. 이런 우주에는 음(-)의 중력에너지를 포함한 총에너지가 0인 한, 물질과 복사가 존재할 수 있다.

2. 무(無)에서 탄생한 닫힌 우주가 오랫동안(무한소의 시간보다 길게) 유지되려면 인플레이션과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처럼 기하학적으로 평평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양자 중력은 무(無)(시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무)에서 창조된 우주를 허용할 뿐만 아니라, 그런 우주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도, 공간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무(無)'는 태생적으로 불완정하다!」*


- 로렌스 크라우스


로렌스 크라우스가 쓴 <無로부터의 우주>는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사상과 대결하다 보니 철학자와 신학자를 깔보며 과학자의 우월성을 은근히 뽐내고 있다. 그가 알고있는 철학과 신학이라는 것이 인격적 유일신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일부 철학과 신학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자못 오만한 태도로 말하자면, 그의 책 전부는 중국 송나라 철학자 장재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직관의 길고 호들갑스러운 각주에 불과하다.


"'허'니 '공'이니 하는 것이 곧 기라는 사실을 안다면 '무無'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태허에는 기가 없을 수 없으며, 기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고, 만물은 흩어져 태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을 따라 들고 나는 것은 모두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 장재


15/02/08


* 로렌스 크라우스, <무로부터의 우주: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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