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떠나는 날 본문
죽을 때를 아시는 분들이 있다. 보통 수행이 높으신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립군 이범석 장군의 새 어머니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어머니는 백일기도를 위하여, 어떤 고된 일이 있거나 눈비가 쏟아지나 아랑곳없이 밤 열두 시에 영천 약수물을 떠다가 나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리셨다.
백일기도를 올린 지 8년째 되던 해,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음식을 장만하여 일가친지들을 모두 불러다 풍성한 잔치를 베푸셨다.
때가 되어 손들이 모두 흩어져 갈 때, 어머니는 내 출가한 누님을 부르시며,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거라."
하시매, 누님이 모처럼 친정어머니 곁에서 유할 양으로 뒤처졌다.
누님을 앞에 앉히신 어머니는 평상시의 말투로,
"내가 오늘은 떠난다."
하셨다.
누님은 어머니가 또 만주로 떠나신다는 말씀인가 생각하는데 어머니는 이어, "내 마음은 범석이 보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다. 10년 기도를 다 못 드리고 가는 게 한이다만 내가 죽더라도 아예 땅에 묻지를랑 말고 화장한 뒤 추린 골회를 갈아 한강에 뿌려다오. 뼈가루나마 날아가서 범석일 보아야지."
하시더니 벽에 기대어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새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 이범석, <우등불>에서*
13/01/13
'명문장, 명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 (0) | 2013.01.14 |
---|---|
가망 없는 우리 일의 성공을 위해서! (2) | 2013.01.13 |
사상이 버려진 자리 (0) | 2013.01.13 |
청년 문정현 (0) | 2013.01.13 |
금리 (0) | 2013.01.13 |
우리 글 갈고 닦기 (0) | 2013.01.12 |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0) | 2013.01.12 |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