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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묵시록 '천년 동안에' 리뷰 본문
마루야마 겐지의 『천년 동안에』를 읽다 보면 마치 요즘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보고 작가가 엊그제 쓴 소설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서지정보를 찾아보면 1996년 최초 출간이다. 그만큼 이 소설의 어떤 부분은 마치 2017년 오늘날의 세상을 보여주는 양 예언서를 방불케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사자가 되지 못하고 낙타, 혹은 양떼에 머물 뿐인 인간 군상을 끊임없이 질타하고 조롱한다. 삶의 참된 맛은 야성적으로 사는 데서, 아무도 지배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자유를 추구하는 데서 솟구쳐나오며, 안주하고 무리짓는 순간 짐승의 눈빛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다는 게 그의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그의 에세이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 나온 중심 메시지가 픽션이라는 형태로 반복된다.
읽다보면 언뜻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가 말하는 자유, 자립, 고독, 독립의 삶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함인가? 그런 삶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는 오히려 자폐적인 삶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행히 지혜롭게도, 그럴 때마다 작가는 그저 무리 속 경쟁에서 탈락하여 혼자 남았을 뿐인 홀로있음과 사람과 교류하면서도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진정한 홀로서기가 전혀 다른 것임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는 말한다.
고이면 죽는다. 멈추지 마라. 삶에 굴복하지 마라. 일어서 싸워라. 선지자들을 믿지 마라. 모세는 오지 않는다. 목소리 큰 자들의 광기에 휩쓸리지 마라. 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 무리 속에 안주하지 마라. 졸개가 될 뿐이다. 계속 흘러라. 자유는 흐르는 자와만 함께 한다. 삶은 천 년을 살아도 알 수 없는 신비, 당신은 참으로
"잘 태어났다!"*
「그는 이렇게 역설한다. 마침내 새 헌법을 만들 시기가 도래하였다. 오랜 전통을 본받아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무법지대로 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바보 취급만 당하고 있지 않은가!"란 과격한 한마디는 청중들의 마음속에서 말라비틀어져가고 있던 애국심에 단비를 뿌리고, 잃어가고 있던 인생의 목표에 강렬한 빛을 던진다. 그래봐야 일당 독재와 실추된 천황의 권위를 되살려 다시 한번 신격화하는, 그런 시대로 역행할 뿐이다. 군사 대국의 간섭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군사 대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진부한 이론이 다시금 꿈틀거리려 할 뿐이다.
지성의 승자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소립자론이 여간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벽에 부딪치자,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이 고개를 쳐들이 시작하였다. 한때 죽어가던 신의 얼굴에 발그스름하게 핍기가 돈다. 그리하여 권력은 수호신을 모신 숲과 촛불을 켠 신단을 거주지로 하고 있는 저 조잡한 신과 또다시 손잡으려 하고 있다. 창고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기괴한 제구들이 다시금 세상을 넘보려 하고 있다.
그런 대세를 거역하는 자를 제거하려는 광기와 타산으로 뭉친 단체가 나날이 세력을 더하고 있다. 놈들은 애국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것을 자신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 점이 두렵다. 그들은 오직 떠들썩한 논의를 압살해야만 시대의 선각자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가숨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의 정체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동료라고 여겨지는 무리들과 잇달아 붕우의 계약을 맺으면서 뒤로는 서로 혀를 내밀고, 약속을 쓰레기로 만들 구실을 찾고, 배신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원숭이의 시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세상의 어떤 규범도 좇지 말고, 오로지 흐르기를 계속하라.」*
17/02/05
* 마루야마 겐지, 『천년 동안에』에서 인용. 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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