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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점은 꼭 상대주의에 빠지는가? 본문
「절대적인 진리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니체는 독단주의자들처럼 비뚤어진 방식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대신 관점주의적인 인식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힌두 철학에서 말하는 'darshanas'를 떠올리게 한다. 인도에는 유일하고 전제적인 진리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서로 교차하는 여섯 개의 위대한 '관점들', 즉 사유 체계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유한한 관점들이 무한한 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했던 라이프니츠와 달리, 니체는 어떤 중심점도 없는 관점주의를 구상했다. 주체의 개념이 해체됨에 따라, 어떤 끈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정착되지 않은 시선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니체에게 이렇게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정된 좌표가 전부 없어진다면, '각자에게 각자의 진리'라는 식의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니체는 반대로 생각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관점을 다수화하면, 그 대상의 전체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반면 독단주의자는 옹졸하고 비개성적인 자신의 관점을 보편화하는 데 만족하고 만다. "오직 관점주의적으로 보는 것만이, 오직 관점주의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한 사태에 대해 좀 더 많은 정서로 하여금 말하게 할수록, 우리가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해 좀 더 많은 눈이나 다양한 눈을 맞추면 맞출수록, 이러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나 '객관성'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지를 모두 제거하고, 정서를 남김없이 떼어 낸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지성을 거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니체, 『도덕의 계보』]
... 니체는 인식 활동을 일종의 숨바꼭질 놀이로 본다. 접근 방식들을 다수화해서 도망가는 진리를 유혹하는 놀이 말이다. 진리를 구하는 자는 기발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진리 중에는 순각적으로밖에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하게 수줍고 예민한 진리, 불시에 붙잡거나 놓아 줘야만 하는 진리가 있다."[니체, 『즐거운 학문』]」*
15/11/23
*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 & 다미앙 막도날드. (2012). 유럽의 붓다, 니체. (강희경, Trans.). 파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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