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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본문
「이처럼 '사랑의 경험'이 갑자기 풍족해지고 또 일견 누구나 이용 가능한 것이 되자 사람들은 사랑이란 것(사랑에 빠지는 것, 사랑을 구하는 것)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이며, 그러한 기술은 실험을 거듭할수록 또 열심히 노력할수록 더 잘 숙달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사랑을 나누는 기술은 경험이 축적되면서 늘 수밖에 없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실제로 흔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번 사랑은 현재 즐기고 있는 사랑보다 훨씬 더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물론 그 다음번 사랑보다 더 스릴 있고 더 자극적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 사랑의 에피소드들이 연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랑에 대한 지식도 양적으로는 늘어난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은 '사랑'이란 급작스럽고 짧고 또 충격적인 사건으로, 깨지기 쉽고 단명하기 마련이라는 선험적 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해서 획득된 기술은 '빨리 끝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종류로, 그러한 기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였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한번'이라는 강박관념에 이끌리고 또 이번에 하는 시도가 다음번 시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기울인 돈 조반니였지만 그 또한 '사랑의 불능자'의 전형이었다. 사랑이 돈 조반니의 지칠 줄 모르는 탐색과 실험의 목적이었다면 '다시 한번 해봐야지'라는 강박관념이 그러한 목적을 좌절시켰다. 사랑의 '기술'의 표피적인 '습득'은 결과적으로 오히려 사랑에 대해 전혀 무지하게 만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즉 돈 조반니의 경우에서처럼 사랑에 대한 '훈련된 무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15/10/02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리퀴드 러브. (권태우 & 조형준, Trans.).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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