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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있어 이치가 있으니 인욕을 막아서는 안 된다 본문
"성이란 생명의 이치이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 부여된 이 이치에 어떤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인의예지의 이치는 하우(下愚)라도 없앨 수 없고, 성색취미의 욕구는 상지(上智)라도 폐기할 수 없으니, 모두 성이라 부를 수 있다."
"불에는 불꽃이 있고, 물에는 습기가 있으며, 초목에는 뿌리와 줄기가 있듯이", "욕망이 있어 이치가 있다."
"기호와 욕구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천리가 나오는 곳이요", "어떤 감응도 천도의 유행 아닌 것이 없다."
"인욕을 억제하는 것은 천리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천리를 보존해야만 비로소 인욕을 억제할 수 있다. 존양공부는 성학의 근본이요 성찰은 그것에 더하는 공부이니, 본디 주도적인 것과 보조적인 것이라는 구분이 있다."
"육경과 사서에 보이는 공자와 안연의 학문은, 그 요지가 천리를 보존함에 있다. 언제 이 인욕만을 (사악하고 위험한) 뱀과 전갈로 여겨 다스렸으며, 반드시 그것을 한칼로 베어 완전히 구분하고 영원히 없애버렸는가? ······ 욕망은 (공부에서) 원래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보광은 '반드시 인욕을 모두 없앤 다음에야 천리가 자연스럽게 유행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크게 잘못되었다. 체로써 말하자면, 천리가 가운데서 충실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주인이 되어 인욕의 일어남을 제지하겠는가? 용으로써 말하자면, 천리가 유행하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의 일은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 만일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반드시 인욕과 연결된다. 이와 같은데도 인욕을 모두 없애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성색취미는 이치가 드러나는 곳이다. ······ 만일 인욕을 모두 없앤 다음에야 천리가 유행한다면, 약간이라도 병농예악(兵農禮樂) 등에 상관되는 모든 공리적 일들은 천리에 의해 막히고 방해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질을 헤아려본다면 어찌 '모든 것을 공허하게 하는' 사악한 주장이 아니겠는가?"
"속귀[內耳]와 속눈[內目]이 철저하면 혈기가 영명해지고, 은밀한 마음이 뻗어 들어가면 혈기가 감화된다. ······ 그것을 방해하지 않을 따름이다."
"공자는 '나는 동주(東周)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어찌 커다란 욕망이 아니겠는가?"
"나는 욕망이 적은 사람이 이치에도 박약할 것이라 두렵고, 세상에 몸을 던지는데 야박한 사람이 세상의 임무에 소홀할 것이 두렵다."
"형체가 빛을 가려 그림자가 생긴다. 인욕이란 눈과 귀, 입 그리고 몸에 가려 그 천리가 막힌 것이다. 귀가 소리에, 눈이 색에, 입이 맛에, 몸이 편안함에 구속당하면 마음의 영명함 또한 그것을 좇아 한 사물에 구속당하니,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싫어한다. (그리하여) 시비의 준칙과 길흉의 느낌도 코앞에 있는데 알지 못하게 된다. 이는 사물만 중요하고 나는 하찮은 것으로, 하우(下愚)가 함닉(陷溺[: 주색 따위의 일에 빠짐])하게 되는 까닭이다."
- 왕부지
15/08/30
* 안재호. (2011). 왕부지 철학: 송명유학의 총결. 문사철.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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