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홀연한 깨달음은 없다 본문
「오직 하학 처에서만 성공이 있는 것이지 상달에 도달하는 데는 오히려 힘을 쓸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희는 하학(下學)하면서도 상달(上達)할 수 없는 것은 다만 하학에서 얻는 것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 주장은 분명하다. 그런데 주희는 홀연 상달이라는 말을 하였으니 나 보기에 타당하지 않다. 만일 어떤 시기를 인연으로 얽어 놓고 미혹과 깨달음의 시간 경과에 따라 본다면, 이미 불가의 붕당에 들어간 셈이다. (···) 홀연 상달은 이미 하학하는 일과 양편을 갈라서 상달한 이후에 일체무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불가가 벽돌 조각으로 문을 두드려서 문이 갑자기 열리면 벽돌조각은 쓸모가 없다는 취지이다. 불가는 돈멸을 깨달음으로 삼기 때문에 가르침이 그런 것에 있다. 그러나 성인이 자기를 반성하고 수양하여 하늘과 동일하게 된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실재 노력을 통하여 무지를 채워 나아가는 것이니 어찌 그런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天)은 뭇 양(陽)을 축적하여 스스로 강건하고, 천은 스스로 쉬지 않으니 성인의 순수함이라 하였다. 발분하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즐거움으로 근심도 잊고 늙음이 이르는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성인이 이룬 상달은 하루아침에 홀연히 이룬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 왕부지
15/08/30
* 천병준. (2006). 왕부지의 내재적 기 철학. 한국학술정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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