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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는.. 본문
「물론 다른 요소도 있죠. 앞의 경우에 저는 섹스와 출산이 분리된 결과 섹스는 해방되어 '섹스테이먼트'로 재활용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가용성의 정도, 접근의 용이함 그리고 득실의 균형에 따라 그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많은 즐거운 오락 중의 하나로 말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야말로 순전한 오락으로 축소되는 한, 섹스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매력과 유혹적인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개연성 있는 대답은 아마 이럴 것입니다. 즉 '그렇게 오래는······.'
부담이 크고 거추장스러운 장기적 헌신과 기타 '부대조건'이라는 정나미 떨어지는 유령을 아무리 말끔하게 청소해버린다 해도 섹스는 여전히 쾌락과 오락들의 리그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 사회에서 쾌락이 선택되는 경향과 관련해, 앞서 언급한 기준들이 적용되는 한에서는 말이죠(그런데 대부분 경우에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지요).
섹스는 도저히 양도 불가능한 주체성을 부여받은 두 파트너 간의 사건이기 때문에 완전히 물화되고 상품화된 다른 쾌락을 얻을 때처럼 용이하고 즉각적으로 ― 단지 지폐를 몇 장 건네주거나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단순한 행위로 충분하지요 ―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멉니다. 섹스는 심지어 달갑지 않은 장기적 결과들에 대한 보험에 들어있더라도 기본적인 협상을 요구하며, 파트너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며, 상대방의 환심을 제대로 사야 하며, 쥐꼬리만 한 공감이라도 얻어야 하며, 미래의 파트너에게서 한 번 어떻게 해보고 싶은 일정한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보험을 들었든 그렇지 않든 성교는 운명에 미래의 성공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적 쾌락은 아무리 강렬하더라도(아무리 성적으로 매혹적이고 탐나더라도) 대부분의 다른 쾌락들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곤란함에 비추어 가늠되어야 합니다.」*
15/08/23
* 지그문트 바우만, & 시트랄리 로비로사-마드라조. (2014).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몸도 마음도 저당 잡히는 시대. (조형준, Trans.). 새물결.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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