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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좌파로 불릴만한 비전, 정책, 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
「오늘날 유권자의 상상력에 호소할 수 있으며, '좋은 경제 정책'은 '좌파적 경제 정책'일 수 있다고 설득시킬 수 있는 뚜렷하게 '좌파적' 비전이나 신뢰할 만한 강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3의 길'이라는 사유 노선을 따를 때 '좌파적'이라는 것은 우파가 완수하길 원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보다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처 하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생각, 즉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인과 가족들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무자비한 개인화, 사사화[민영화], 규제 완화라는 생각에 제도적 토대를 놓아준 것은 블레어의 '신노동당'이었죠.
프랑스의 사회적 국가를 해체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프랑스 사회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부와 중부 유럽의 '탈-공산당' 정당들 ― '사회민주주의자'로 개칭했습니다만 ― 의 경우 여전히 끈질기게 공산주의적 과거에 헌신하고 있다고 비난받지 않을까 조심하지만 부자를 위한 무제한의 자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챙기라는 주의 아닌 주의의 가장 열정적이고 떠들썩한 옹호자들이자 가장 철저한 실천자들입니다.
1세기 이상 동안 좌파의 변별적 표식은 혼자서는 맞서 싸울 수 없는 강력한 힘들에 맞서 집단적으로 모든 성원을 돌보고 지원하는 것이 공동체의 신성불가침의 의무임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사회민주주의적 희망들은 현대의 주권적인 민족-국가에 투자되어 왔습니다. 경제적 이해집단들로 하여금 국가의 정치적 의지와 민족 공동체의 윤리적 원리들을 존중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시장의 무제한적 활동에 의해 영구화될 수 있는 손실을 제한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가 충분히 강력하고 야심만만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민족-국가는 더 이상 과거처럼 또는 사람들이 바랐던 것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한때 영토와 그곳의 인구에 대한 완전한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주권을 요구했던 정치적 국가는 더 이상 공동의 삶의 그러한 측면들 중 어떤 것에서도 주권적이지 않습니다. 경제적 힘들을 정치적으로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은 정치적 제도들과 경제적 제도들이 동일한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 하지만 오는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권력들, 즉 대부분의 우리 동시대인들의 삶의 선택과 기회들의 범위를 결정하는 권력들은 민족-국가로부터 글로벌한 공간으로 증발된 채 정치적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떠돌고 있습니다. 정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지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권력들을 규제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더 이상 손을 미칠 수조차 없습니다. 지구화의 결과 중의 하나는 (독일어 Macht라는 의미에서의 ― 어떤 일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 권력과 정치가 분리된 것입니다. 지금 권력은 전 지구적 공간(카스텔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흐름들의 공간') 속에서 정치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며, 정치는 국지적 공간(동일한 저자의 어휘를 빌리자면 '장소들의 공간') 속에서 권력을 박탈당한 상태이지요.
사태가 이런 식으로 발전하자 사회주의자들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유일한?) 도구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에게 존재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던 '사회적 국가'는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는 더 이상 구성되거나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그러한 목적을 위해 길들여야 할 힘들은 민족-국가의 지휘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이미 약화된 국가를 이용하려는 시도들은 역외의 전 지구적인 경제적 힘들 또는 시장의 압력으로 대부분 좌절되었습니다. 점점 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무능력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와 정당화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민주당, 그리고 이 문제에서라면 폴란드의 '좌파와 민주주의자들'이 그렇게 찾아 나선 사람들이 이르게 되는 목적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트레이드마크와 정당화의 총체적인 부재가 그것이지요. 그처럼 궁극적인 형태에서 과거 좌파의 먼 자식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유일한 기회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대방의 실패뿐입니다. 그리고 선거인단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곤 그러한 실패에 반감을 품은 성난 희생자들뿐이고요.」*
15/08/21
* 지그문트 바우만, & 시트랄리 로비로사-마드라조. (2014).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몸도 마음도 저당 잡히는 시대. (조형준, Trans.).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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