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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에 상처 입을까 봐 살균되고 표백된 위조된 사랑 본문
「전자 기기의 경우와 달리, 한 인간에 대한 한 인간의 사랑은 헌신, 위험 감수, 자기희생의 의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지도에도 없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자 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밝은 행복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안락과 편의와는 함께 할 수 없다. 사랑은 안락과 편의에 대한 확신은커녕··· 안락과 편의에 대한 자신 있는 기대조차 가질 수 없다. 사랑은 당사자에게 그의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그의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살균되고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고 고통도 위험도 모르는 전자 공학의 산물들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프랜즌의 말처럼, 전자 기기가 제공하는 것은 '사랑이 우리의 자존심의 두려움에 쏟아붓는 쓰레기'로부터의 보호이다. 결국 사랑의 전자적 버전은 결코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 기반 기술의 산물들은 나르시시즘의 충족이라는 미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그것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하건 우리를 좋게 생각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프랜즌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자기가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쉴새 없이 자기 사진을 찍고 마우스를 클릭한다. 기계는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해준다···. 친구 맺기란 실물보다 나아 보이게 해주는 거울들로 가득 찬 사적 공간에 어떤 사람을 입장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완벽하게 호감을 살 만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관계와 양립할 수 없다.'
사랑은 나르시시즘의 해독제이거나 혹은 그런 존재가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자존심을 행위 영역에서 확인하기를 애써 회피하면서 가식의 보금자리에 앉혀 두려고 할 때, 사랑은 바로 그 가식이 허위임이 폭로하는 최고의 밀고자다. 사랑의 전자적 버전, 즉 전자적으로 살균되고 하얗게 도포된 위조된 사랑이 제공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악명 높은 위험으로부터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이다.」*
15/08/09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안규남, Trans.).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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