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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지적 혁명가가 아닌 인지적 보수주의자 본문
「콜린스의 편지에서 내가 무척 재미있게 생각했던 부분은 그가 가핑클의 민속방법론을 비판이론과 대조시킨 부분이다. 콜린스는 비판이론가들이 민속방법론을 자기들 이론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은 민속방법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이론가들은 생활세계에서 그들이 발견했다는 '물화'를 문제시하면서, 이론적 비판이 물화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민속방법론자들의 주된 연구결과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지적 혁명가들'이 아니라 '인지적 보수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의심하지 않는 실재가 사실은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민속방법론에서 소위 '위반 실험'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반 실험은 일상적 실천에서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가정, 행위, 언어사용을 고의적으로 위반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깨뜨리려는 실험이다. 사람들은 이런 위반을 경험했을 때 모호함을 느끼며, 곧바로 이전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한다. 다음 대화를 통해서 위반실험을 예시해보자.
갑: 잘 있었니?
을: 어떤 의미에서 그 질문을 하는 거니? 나의 건강, 가족, 친구 관계, 금전문제, 학업문제?
갑: 너 어떻게 된 것 아니냐?
콜린스의 주장을 더 잘 예시해줄 수 있는 것은 서문에서 다룬 이종격투기이다. 비판이론가가 이종격투기를 당연시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종격투기가 자본주의의 산물로서 인간을 황폐하게 하며, 자율성을 빼앗는 물화된 실천이라고 했을 때, 이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이종격투기를 철학적·사회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지금까지 당연시해온 실재 ― 즉, 이종격투기는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스포츠 ― 를 버리고 그 대신 철학적·사회학적 성찰로 가득 찬 이론의 세계를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성찰적인 이론에 의해서 위협받는, 그들이 당연시해온 실재를 옹호하려는 노력을 할까? 사람들이 인지적 혁명가라면 전자를 선택하겠지만, 그 반대로 인지적 보수주의자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자들과 가핑클을 연관시키면서 콜린스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사람들은 실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기반 위에 서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그런 관점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고 주장한 실존주의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가핑클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콜린스의 다음 주장인데, 이는 우리가 흔히 민속방법론의 연구대상인 사회질서를 바꾸려는 시도에서 파생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갈등조차도 '인지적 보수주의적'인 시각에서, 즉 민속방법론의 시각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콜린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들이 맞서 싸우는 모든 것들 ― 예를 들면,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이나 지위에 대한 모욕과 맞서 싸우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가진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물론 자신들이 가진 권력은 제외하고),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등 ― 도 사회적 구성물들과 물화 내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 영역을 완전히 넘어서는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15/08/03
* 김경만. (2005). 담론과 해방: 비판이론의 해부. 서울: 궁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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