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이론적 희망은 희망일 뿐이지만, 근거 없는 희망을 추구해보고 또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한다 본문
아래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김경만의 『담론과 해방』 초고를 읽고 보낸 편지.
「
김경만 귀하
나는 당신의 흥미로운 생각을 나와 나누려고 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게 보내준 원고를 대단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지식인들이 가진 사명감과 희망을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그 완결성과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수많은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힌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도 결국 실패했습니다.(나의 어떻게 보면 완성되지 못한 결론은 최근 논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 논문[「Thinking in Dark Times」 in 『Liquid Life』]을 첨부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실천적 이슈들 ― 즉 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형태를 바꾸는 행위들 ― 을 이론 영역에서 풀어낼 수 있다고 정말로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우리[이론가]가 [일반 대중과]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대화의 결과를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대화 상대가 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론적 희망을 실제로 실천해보지도 않고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지식인들의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비판은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해체한 후에도 우리는 또다른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혹은 '근거가 없는' 희망을 추구하는 데 동의하고, 이런 희망이 보여주는 길 안내판을 주시하고, 우리의 발로 그 길을 개척해야 하지 않을까요?
존경과 감사와 모든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라며······
지그문트 바우만. 2004.11.8」*
15/07/26
* 김경만. (2015).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문학동네.
'명문장, 명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배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0) | 2015.07.30 |
---|---|
사회과학자들은 우월한 인식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0) | 2015.07.28 |
학자가 일반인보다 우위에 있을까? (0) | 2015.07.27 |
이론과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0) | 2015.07.26 |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0) | 2015.07.26 |
한국에서 순수한 학문연구는 환영받지 못한다 (0) | 2015.07.25 |
헛된 정열 (0) | 2015.07.24 |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