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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정열 본문
「필자는 20대 청년시절 남들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유럽 벨지움 루벵 대학교에 유학을 떠났다. 그때가 60년대 초반이었다. 어렵고 까다로운 그쪽 대학의 시험에 실패하고 돌아올까봐, 또 부모님의 큰 기대에 실망을 인겨 드릴까봐 유학기간 내내 정말 한눈팔지 않고 주야로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공부 이외에 아무런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필자의 20대 젊은 시절의 미숙한 눈에 비친 서양의 모습은 그 당시의 우리와 비교하여 참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그때 필자는 경제적 콤플렉스를 심하게 느꼈다. 나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으로 동방의 문화민족이다라는 자부심은 있었다. 단지 전쟁으로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 가난을 털고 일어서면, 우리도 유럽처럼 선진문화 민주주의의 국가를 경영할 수 있으리라 여겼었다.
'헛된 정열'이었다. 필자의 20대부터 지녔던 소박한 이데올로기가 '헛된 정열'이었다는 참담하고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작년에 20년 전에 공부하던 그 루벵대학에 다시 공부하러 떠났었다. ······50대에 막 접어든 필자는 이번에 문화적 충격이랄까, 콤플렉스를 느꼈다. 이 문화적 콤플렉스가 무엇일까? 지금 말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속에 축적된 과학지식에서의 평균적 역량과 아름다움을 생활 속에 자연화시키는 감수성의 질 ― 아름다움이 없는 도덕은 거치른 소음만을 낳는다 ― 이 없이는 선진문화 민주국가가 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평화와 평안이 있는 곳을 찾으면서, 필자가 조용히 할 수 있는 바른 일은 과학지식의 축적과 감수성의 질을 닦아 나가는 것뿐이라고 생각된다.」*
- 철학자 김형효,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
15/07/24
* 김경만. (2015).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문학동네.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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