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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본문

명문장, 명구절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모험러

「옛집은 내게서 더욱 멀어져갔고, 고향의 산천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지만, 그러나 나는 조금도 미련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사방으로 보이지 않는 높은 담에 둘러싸여 나 혼자 격리된 듯이 느껴졌고, 그러자 몹시 우울해졌다. 그 수박밭의 은목걸이를 한 작은 영웅의 영상도, 원래 그토록 선명하던 것이 갑자기 흐릿해졌고, 그러자 나는 몹시 슬퍼졌다.


어머니와 훙얼은 잠이 들었다.


나는 누운 채 배 밑바닥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결국 룬투와 이 정도까지 격절되었지만, 우리의 후배들은 아직 한마음이다, 훙얼은 수이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희망한다. 그들은 더이상 나처럼, 사람들끼리 격절되지 않기를······ 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이 한마음이 되려고 하다가 그 때문에 나처럼 괴롭고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들이 룬투처럼 괴롭고 마비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괴롭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희망을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시도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그것을 비웃었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만 그의 소망은 아주 가까운 것이고 나의 소망은 아득히 먼 것이라는 것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 루쉰, 1921. 1. <고향> 중.


15/07/26


* 루쉰 소설선, 전형준 옮김, <아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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