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21세기 사무노동직의 쇠퇴 본문
「기술 수업을 없애고 무능한 노동자들 마저 모두 대학으로, 뒤이어 칸막이 사무실로 보내려는 열망을 둘러싼 '미래의 직업'과 같은 미사여구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가 후기산업경제를 향해 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오직 추상적 개념만을 다루게 될 거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거래하는 일과 그것을 사고하는 일은 다르다. 사무노동직도 관례화와 쇠퇴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100년 전 수공 제조업에 닥쳤던 것과 같은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 즉, 사무직의 인지적 요소들이 전문가들로부터 전용되어 시스템이나 공정에 도입되고, 결국에는 전문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무원 계급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만일 전보다 훨씬 적은 지식인에게 집중되면서 진정한 지식노동이 늘어나기는커녕 실제로는 줄어들고 있다면, 이는 학생들에게 취업에 대한 조언을 할 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만일 학생이 머리 쓰는 일을 원하고 그 머리로 엉뚱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운명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들이 과학적 관리법의 논리를 위협하는 일, 그렇기에 이 논리로부터 안전한 일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바버라 갈슨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전자공장 ― 컴퓨터는 어떻게 미래의 사무실을 과거의 공장으로 바꿔놓는가?』에서 "인간의 비범한 독창성이 어떻게 그 독창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테일러가 작업 현장을 합리화한 것 처럼, 전문가 시스템 역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의사결정을 고용인에게서 고용주로 넘겨주기 위한 것"이다. 테일러의 시간과 동작 연구가 모든 구체적인 작업 동작을 세세한 부분으로 나누었던 것처럼,
현대의 지식 공학자도 벽돌 쌓기 동작이 아닌 의사결정을 분석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비슷한 형태로 세부 연구를 수행한다. 말하자면 '시간과 동작 연구'가 '시간과 생각 연구'가 된 것이다. [···] 전문가 시스템을 세우기 위해 전문가는 임무를 수행한 내용을 보고하고, 이 내용은 지식 공학자에 의해 복제된다. 전문가는 보통 몇 주 또는 몇 달에 걸쳐 면담을 한다. 지식 공학자는 전문가의 표본 작업에 문제가 없는지 지켜보고, 전문가에게 직관적 결정을 내릴 때 정확히 어떤 요소들을 고려했는지 묻는다. 결국 수백, 수천 개의 경험 법칙들이 컴퓨터에 입력된다. 그 결과 단순히 방정식으로 계산하는 대신에 발견적 해결 방법[복잡한 문제를 풀 때, 시행착오를 반복 평가하여 자기 발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결정을 내리'거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복잡한 전문가 시스템은 실제 전문가처럼 어떤 사항을 제안하거나 제외시키는 '불확실한' 또는 불완전한 자료를 가지고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전문가 시스템은 판단을 내린다(또는 판단을 대신한다).
어떻게 보면 복제된 인간 전문가는 막대한 지배력과 불멸을 얻는다. 하지만 전문지식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다른 전문가와 미래의 전문가는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갈슨은 "이는 자문 사업이나 인적 서비스 사업에 종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적 조언의 창시자보다는 보급자로서 일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뉴캐피탈리즘』에서 리처드 세넷은 바로 이런 과정, "특히 대형 금융거래, 첨단기술, 복잡한 서비스 같은 최첨단 영역"의 과정을 묘사한다. 진정한 지식노동은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엘리트에게 집중된다. 우리는 '지식노동'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모든 배를 들어올리며 떠오르는 순수한 지적 활동의 바다 같은 이미지를 버려야만 한다. 이보다는 떠오르는 사무원직의 바다 이미지가 더욱 그럴싸하다. 또 다른 기대는 현대 경제의 기본 논리인 인지적 계층화를 뒤집고 싶다는 희망이다. 이 희망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역사를 길잡이 삼아 현재를 살펴보면, 공예 이데올로기가 노동자들을 조립라인에 적응할 수 있게 준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희망에 대한 자극이 도리어 젊은이들을 사무원직에 맞게 준비시키는 방편이 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둘 다 멀리서는 일을 흥미롭게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 뒤집힌 이미지를 제공할 뿐이다.」*
15/04/12
* 매튜 크로포드. (2010).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손으로 생각하기. (정희은, Trans.). 이음.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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