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페르낭 브로델 (7)
모험러의 책방
도시의 사망률 감소, 위생과 의학의 발달, 천연두의 후퇴, 상수도 시설의 확대, 유아 사망률의 하락, 그에 따른 사망률의 전반적 하락, 결혼 연령이 낮아진 것 때문에? 하지만 그것은 서유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중국과 러시아, 18세기 아메라카 대륙에서의 인구 증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8세기 경제 회복과 함께 생활 공간 확대 때문에? 그러나 그러한 팽창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기본적으로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공간은 결국 언제나 제공되어 있었는데 왜 같은 시기에 '지리적 콩종크튀르'(동시적 움직임)이 작용했는가? 바로 이 동시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당시에 이미 효과적으로 작동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허약했던 국제경제만으로는 그토록 일반적이고 강력한 움직임..
「자본주의는 상부구조의 현상이며, 소수의 현상이고, 높은 곳의 현상입니다. 자본주의의 특권과 우위는 늘 선택할 여지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독점이 사라졌다고요? 그렇다면 다른 걸 찾으면 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본주의는 죽었을지 모르지만, 아들과 손자의 자본주의는 계속 이어갑니다.」* 「최악의 오류는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이라고만 여기고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 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애초부터 육중한 상대자였던 국가와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고 공모하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또 사회 구조를 지탱해주는 문화의 역할도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란 것이 서로 상충하는 조류로 나뉘고 불평등하게 분포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떠받치는 것이 그 본연..
「결론적으로 나 나름대로 천천히 영글게 된 생각을 말하면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적어도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자본주의는 그 밑에 두터운 층 두 개 ―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 ― 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에서 서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를 최상층의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내 생각을 비난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닙니다. 레닌은 1917년에 작성한 소책자, 『제국주의,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두 번 언급합니다.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이 가장 발달한 단계다", 또 "..
「화려한 번영과 부와 행복한 삶은 경제계의 중심, 즉 그 핵에 집중됩니다. 역사의 태양이 가장 화려한 광채를 발하는 곳이 거기고, 물가와 임금도 높고 호화로운 일류 상품에다 은행과 고수익 산업과 자본주의적 농업이 출현하는 곳도 그곳입니다. 원거리 무역의 기점이자 종점이고, 귀금속과 경화, 신용 증서가 밀려듭니다. 근대적 경제 활동이 앞서 등장하는 곳도 그곳입니다. 15세기 베네치아나 17세기 암스테르담, 그리고 18세기 런던과 오늘날의 뉴욕을 둘러본 여행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목격합니다. 대개 첨단 기술도 그곳에 나타나고, 그에 동반해 기초 과학도 발달합니다. 그곳에는 '자유'가 싹틉니다. 이 자유가 완전히 현실인 것도 아니지만, 전적으로 허상인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자유라든가, 네덜..
「간단히 말해, 북유럽 사람들의 승리는 우월한 사업 개념이라든가 자연스러운 산업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물론 그들의 임금이 낮아서 유리했던 점은 있었습니다). 북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과는 더욱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단지 이전의 승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 개입되었던 것도 물론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레닌은 이 폭력적인 세계 분할을 규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폭력이나 세계 분할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처한 현실도 여전히 그렇지 않습니까?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수직적 위계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 이 위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역사가로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회를 보고 또 보아도 전부 나름의 위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회들의 위계를 살펴보면, 결국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특권과 권력을 누립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늘 그러한 위계가 있었습니다. 13세기 베네치아나 구체제하의 유럽에도 있었고, 티에르 총리가 활동하던 프랑스나 1936년의 프랑스에도 있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대중의 구호는 '200개 가문'의 권력을 배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일본에도, 중국과 오스만 제국, 인도에도 수직적 위계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역시 위계가 존재합니다. 미국에서도 자본주의는 없던 사회적 위계를 새로 만드는..
자본주의는 위로부터 도입된, 시장경제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시장경제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소수 특권층과 엘리트들이 행사하는 지배력이라는 것이 페르낭 브로델의 주장. 「자본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불평등한 힘의 관계는 사회생활의 모든 수준에서 생겨나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최초의 자본주의가 자기 모습을 펼치고 세력을 형성하며 우리 눈앞에 등장한 것은 사회의 최상층에서였습니다. ... 사람들은 보통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둘이 중세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같은 걸음으로 걸어왔기 때문이고, 자본주의를 경제가 발전하는 동력이라고 내세우거나 경제가 고도로 발달된 상태로 묘사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물질생활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