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욕칠정 (10)
모험러의 책방
"성이란 생명의 이치이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 부여된 이 이치에 어떤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인의예지의 이치는 하우(下愚)라도 없앨 수 없고, 성색취미의 욕구는 상지(上智)라도 폐기할 수 없으니, 모두 성이라 부를 수 있다." "불에는 불꽃이 있고, 물에는 습기가 있으며, 초목에는 뿌리와 줄기가 있듯이", "욕망이 있어 이치가 있다." "기호와 욕구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천리가 나오는 곳이요", "어떤 감응도 천도의 유행 아닌 것이 없다." "인욕을 억제하는 것은 천리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천리를 보존해야만 비로소 인욕을 억제할 수 있다. 존양공부는 성학의 근본이요 성찰은 그것에 더하는 공부이니, 본디 주도적인 것과 보조적인 것이라는 구분이 있다." "육경과 사서에 보이는 공자와 안연의 ..
「마음은 일체(一體)라고 할 수 있다. 온화자량(溫和慈良)하면 인(仁)이 되고, 극벌원욕(克伐怨慾: 남 꺾기를 좋아하고, 뽐내고, 원망하고, 탐욕스러운 것)하면 불인(不仁)이 되는 것이다. 어디에 중점이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아는 이는 인에 힘을 쏟는 일에 노력하고, 악을 막는 일에는 그다지 힘을 쏟지 않는 것이다. 덕에는 중시할 만한 것이 있음에 반해 욕망에는 혐오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을 잘 알지 못하는 이는 단지 욕망이 마음에 누를 끼치는 것을 미워하여 오로지 욕망을 억눌러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로 덕을 지니도록 수양하면 욕망은 자연히 감퇴하여 말을 듣는 것이므로, 욕망이 자신을 어지럽히는 것을 혐오하여 억지로 ..
「슬퍼해야 할 때에는 슬퍼해야 하고, 즐거워해야 할 때에는 즐거워해야 한다. 이것은 인정(人情)의 자연스러운 바로 비록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인정은 성인도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인정의 발로가 절도에 맞으면 그것은 천하의 달도가 되지만, 절도를 벗어나게 되면 한 인간의 사정(私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정에서 추구하여 편안하지 않은 것은 성인도 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정을 억압하는 일은 인정을 방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라 하겠다.」* 14/12/27 * 이토 진사이, 2014/02/22 - 정욕을 억제하면 정신에 증오가 생긴다 2013/07/27 - 성을 억압하면 인간은 노예가 된다, 그것도 폭력적인 2014/11/09 - 정情이 바로 도道이고 ..
「(지극한 천리를 다하고 털끝만큼도 사사로운 인욕이 없다는 것이 왕도라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동자가 물었다. "그러면 왕도는 욕구[욕망]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지는 않지. 『서경』에 이르기를, '의로 일을 제어하고 예로 마음을 제어한다'고 하였고 『맹자』에 이르기를, '군자는 인으로 마음을 보존하고 예로 마음을 보존한다'고 했지. 예의로 잘 다듬으면 정이 바로 도이고 욕구가 바로 의인데 미워할 무엇이 있겠느냐. 예의로 잘 다듬지 못하고 사랑을 끊고 욕구를 없애려고만 한다면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더 잘못되는 것이니, 지극한 정까지 다 끊고 없애 버려 형체를 상하게 하고 눈과 귀를 막아 버린 뒤에야 그치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
「또 주희는 '정'을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원래 주자학에는 비인간적인 엄격주의는 아직 없었다. 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이라는 본원에 도달하며, 성(=정)은 정을 통해 자기를 현재화하는 것이고 또 정을 제외하고는 동적인 장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 이전에 정념은 인간의 생리적 자연이라는 건전한 상식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은 본래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고의 멸정론은 석로釋老의 설이다." "이고가 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은 옳지만 정을 멸함으로써 성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잘못이다. 정을 어떻게 멸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곧 석씨의 설이다." 정념의 움직임 그 자체를 악으로 보았던 것은 여산의 혜원이나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불교자들에게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학의 재발견, 좋다. 그러나 우리는 이理(초월, 절대, 신 등등)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기서 이를 잡든 말든) 일갈한 도올 김용옥에 나는 더 동의한다. 이성은 몸의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삶의 목적은 순결하고 고상한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욕칠정을 가진 몸으로부터 자득(自得)해야 한다. 즉,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근대'는 기학의 축 위에 서 있다. 도저한 근대화가 진척된 지금에도, 그러나 재래의 이학의 관성은 완강하다. 그 기억의 흔적이 기학의 철저화와 전면화로서의 지구촌화나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제약하고 있다. 그 갈등은 지금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기학의 사고를 넘어 이학의 재발견이 한창이다. 2003년 하버드에서 열린 다산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뚜웨..
「모더니티의 인간학적 규정이 합리성(Rationality)이라고 한다면, 플레타르키아(민본성民本性)의 인간학적 규정은 합정리성(Reasonableness)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합리성은 인간의 이성(Reason)을 감정이나 현상론적 감각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합정리성은 인간의 이성을 칠정(七情)이라는 감정의 한 측면으로 귀속시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느낌(Feeling)으로 일원화시킨다. 인간의 수학적 계산능력이라는 것도 인간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고도화된 계산능력이라도 그것은 의식의 현상이며, 의식은 느낌의 고도화에서 발생하는 사태이다. 그것이 토톨로기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불로장생이나 윤회의 근절을 추구하는 요기나 도인, 소승은 삶을 두려워하거나(윤회) 혹은 죽음을 두려워한다(불로장생)는 점에서 똑같다. 그래서 이들 수행의 핵심은 성(性)이다. 성은 삶과 죽음을 낳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을 초월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성을 철두철미하게 억압한다. 그들이 차크라를 정수리로 끌어올렸든, 대주천으로 사리를 이루었든, 마음장상을 이루었든 다 마찬가지다. 관념과 육체는 하나이기에, 이들은 실제 성욕이 절멸해 남자는 성기가 오므라들고, 여자는 때가 한참 남았는데도 생리를 끊는 등의 목표를 이룬다. 성욕이 절멸하면서, 오욕칠정도 같이 절멸한다.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지독한 인내와 고행이 필요하여서, 실제로 저 목표에 도달하는 수행자는 극히 소수다. 그 소수는 대도인으로..
왕양명은 인간의 희노애락, 오욕칠정과 생각(판단)과 감각을 모두 긍정한다. 다만 말한다. '오직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공(空)에 빠져 꺼진 재처럼 되어 지성을 잃지 말라.' 아, 번개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지혜의 말씀이다. . . ― 구천이 물었다. "근년에 저는 넓기는 하지만 대충 훑어보는 학문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매번 고요히 앉아 생각과 사려를 물리쳐 그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생각을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생각을 바르게 해야한다." ― (구천이) 또 물었다. "공부하여 마음을 수렴하고 있을 때 어떤 소리나 색깔이 앞에 나타나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보고 듣게 되는데, ..
'파자소암'이라는 화두는 '노파가 암자를 불사르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어느 노파가 선지식을 뵙는 기쁨을 얻고자 암자를 지어 한 수행승을 모시고 오랫동안 봉양하였다. 20년째가 되는 날 노파는 수행승의 경지를 알아보기 위해 딸을 시켜 유혹하게 하였는데, 딸이 전하기를 자신을 마치 고목이나 바위 대하듯 하더라고 했다. 이에 노파가 불같이 화를 내며 수행승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오욕칠정이 말라 비틀어진 것과, 오욕칠정에 매이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12/12/12 * 이은윤, 에서 봄. 2013/11/15 - 불로장생과 윤회 2014/12/30 - 덕에는 중시할 만한 것이 있고, 욕망에는 혐오할 만한 것이 없다 2014/1..